물가 하락에 경상적자까지…커지는 디플레 공포

입력 2020-06-15 09:00

주요 경제지표가 줄줄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내수와 수출이 모두 쪼그라들고 있다. 지난 5월 내수 상황을 보여주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0.3% 하락했다. 월간 기준으로 사상 두 번째 ‘마이너스 물가’다. 수출 상황을 보여주는 경상수지는 4월 기준으로 9년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두 번째 마이너스 물가…“내수 위축”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4.71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0.3% 떨어졌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9월(-0.4%)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65년 이후 처음 하락했는데, 8개월 만에 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소비자물가는 올 1월 1.5% 상승하며 작년(0.4%)의 저물가를 탈출하는 듯했다. 하지만 2월 1.1%, 3월 1.0%로 상승폭이 줄더니 4월엔 0.1%까지 좁혀졌다. 물가가 떨어진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 전체의 상품과 서비스 수요가 하락한 데 있다.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0.1%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 4월(0.1%)과 같고 1999년 11월(-0.1%)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근원물가는 날씨, 유가 등 외부 요인에 따라 변동이 심한 품목을 제외한 물가 지표로, ‘경기 온도계’로 불린다.

외식·여행·개인서비스 등 가격이 담긴 서비스 물가 상승률도 0.1%에 머물렀다. 외환위기 때인 1999년 12월(0.1%) 이후 최저치다. 국제 유가가 급격히 떨어진 영향도 일부 작용했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국내 석유류 가격이 18.7% 급락했다. 석유류는 전체 물가를 0.8%포인트 끌어내렸다.

다만 농·축·수산물에선 정부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지원금) 효과가 나타났다. 지난달 농·축·수산물 가격은 3.1% 올랐다. 통계청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와 맞물려 긴급재난지원금이 돼지고기, 달걀을 비롯한 농산물 가격 상승에 일조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물가가 계속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소비자는 돈을 그냥 들고 있으려는 경향이 커진다. 좀 더 가격이 떨어질 때를 기다렸다가 소비하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는 소비·투자 심리 위축 → 기업 수익성 악화 → 가계소득 감소 → 경기 침체 심화 등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수출 급락으로 경상수지도 적자

한국 경제의 대들보인 수출도 상황이 좋지 않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4월 국제수지’(잠정)를 보면 4월 경상수지는 31억2430만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경상수지는 국가가 재화와 서비스를 수출한 돈에서 수입한 돈을 빼 계산한다. 이 숫자는 작년 4월(3억9320만달러 적자) 후 1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폭은 유럽 재정위기 때인 2011년 1월(31억5960만달러) 후 가장 컸다.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건 수입도 줄었지만 수출이 훨씬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4월 수출은 363억9360만달러로 작년 4월(484억1830만달러)에 비해 24.8% 감소했다. 2010년 2월(313억6450만달러) 후 최소다. 수입은 355억7000만달러로 16.9% 줄었다. 수입보다 수출 감소폭이 커지면서 상품수지(수출-수입)는 작년 4월에 비해 85.3% 감소한 8억2360만달러를 기록했다. 2012년 4월(3억2830만달러 적자) 후 최소치다. 기업들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배당금을 송금하는 시기가 4월인 것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낙관적 시나리오’를 가정했을 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올해 수출이 전년에 비해 13.5% 감소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될 경우를 전제한 비관적 전망으로는 감소폭이 36.2%에 달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앞으로 경상수지 흑자폭이 줄고 불황형 흑자 양상도 나타날 것”이라며 “미·중 간 무역 갈등이 계속되는 것도 큰 위험 요인”이라고 말했다.

경상수지 흑자는 탄탄한 재정건전성과 함께 한국 경제를 지지하는 양대 버팀목 역할을 했다. 한국의 신용등급(무디스 Aa2, 피치 AA-, S&P AA)이 선진국 수준을 유지한 것도 이 두 지표가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경상수지가 악화하고 나랏빚도 함께 급증하면서 안정적이던 한국의 신용등급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성수영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syoung@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차이는 무엇이며 디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보다 경제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왜일까.
② 국제수지, 경상수지, 상품수지 등의 차이는 무엇이며 흑자와 적자를 오락가락하던 한국의 경상수지가 1998년부터 흑자 기조를 유지하는 이유는 왜일까.
③ 코로나19 사태로 국가부채가 급증한 데다 경상수지도 악화되면서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를 뛰어넘는 위기 국면에 돌입했다고 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