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 총알은 못 막고 南 전단만 막는 게 정상인가

입력 2020-06-12 17:50
수정 2020-06-13 00:02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은 뒤, 우리 정부가 취한 일련의 대응을 납득할 수 없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거세다. 정부는 소위 ‘김여정 담화’가 나온 지 불과 4시간여 만에 ‘전단 금지법’ 추진을 발표했고, 관련 단체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는 등 저자세로 일관했다. 급기야 그제는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깊은 유감과 법에 따른 엄정한 대응’을 강조하는 공식 입장문까지 냈다.

NSC가 이렇게 부산 떠는 모습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올해 세 차례의 미사일 도발과 GP 총격 때도 무덤덤하더니 김여정의 ‘호통’을 떠받드는 듯한 행태에서 국가의 자존감 추락이 불가피하다.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내팽개치면서까지 굴종하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인지 묻는 이들이 많다. 대북 전단이 교류협력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라던 기존 입장은 하루아침에 뒤집어졌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전단 살포 등 모든 적대행위 중단에 합의해 ‘사정이 달라졌다’는 설명이지만, 남북 간 정치적 합의는 “조약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 판결이다.

NSC는 김일성 정권과 반세기 전에 체결한 ‘7·4 남북공동성명’ 조항까지 들춰냈다. 거의 예외없이 북의 선제 도발과 합의 위반으로 오래전 사문화된 문서를 들먹이는 대목은 정부의 수준을 의심하게 한다. 특히 대북전단과 함께 고발된 탈북자단체의 해상을 통한 ‘쌀 페트병’ 보내기는 북에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 인도적 행위다. 굶는 주민에게 쌀을 전달하고 이따금 구충제나 마스크를 넣은 게 단체 해산의 이유일 수는 없다.

청와대는 공유수면법·항공안전법 위반도 함께 지적하고 나섰다. 이는 법률에 규정이 없는 사안에 대해 그것과 비슷한 성질의 법률 적용을 금하는 ‘유추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는 명백한 과잉대응이다. 북한의 고사총 사격에도 끄떡없던 남북관계가 전단 몇 장에 파탄나는 상황이면 정상적 관계로 보기 어렵다. 고통받는 북한 주민은 안중에도 없는 일방통행식 교류로 얻을 게 무엇인지 정부는 돌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