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가 돌아왔다. 아니 햇볕이 드는 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발자국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스스로 만든 곡조, ‘남자의 인생’을 들고 드림 어게인(dream again) 순회공연도 했다. 제목을 들으면 거창한 생각이 든다. 남자·장부·대장부…. 그런데 곡조가 너무 애잔하다. 튼실하지 않은 나뭇가지가 팅팅한 풋과일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무거운 감흥이다.
‘어둑어둑 해 질 무렵 집으로 가는 길에/ 빌딩 사이 지는 노을 가슴을 짠하게 하네/ 광화문 사거리서 봉천동까지 전철 두 번 갈아타고/ 지친 하루 눈은 감고 귀는 반 뜨고 졸면서 집에 간다/ 아버지란 그 이름은 그 이름은 남자의 인생/ 그냥저냥 사는 것이 똑같은 하루하루/ 출근하고 퇴근하고 그리고 캔맥주 한 잔/ 홍대에서 버스 타고 쌍문동까지 서른아홉 정거장.’(가사 일부)
남자의 인생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 가장(家長), 사회적 관계 그리고 자연인이다. 첫 번째 길에는 처자식(妻子息)이 매달려 있다. 남자의 인생에는 세 명의 여자가 있다. 어머니·아내·가슴속 웅덩이에 헤엄치고 다니는 첫사랑 여인이다. 남자의 인생에는 세 가지 욕심이 있다. 나를 닮은 아들·부(富)·명예(名譽)다. 남자는 세 번 운다. 첫사랑과의 이별, 사회적 인간관계적 실패 그리고 부모와 영별할 때다. 나훈아의 ‘남자의 인생’ 노래에 나훈아를 걸쳐본다.
우리나라에서 유학(儒學)과 실용(實用)을 겸비한 남자 한 명을 꼽으면 단연코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30대에 경기도 암행어사를 하고, 수원 화성을 지어냈다. 18년간 강진에서 유배를 살았고, 고향 두물머리에 돌아와서 뽕나무를 가꾸다가 혼인 60주년 회혼일 아침인 1836년 4월 7일(음력 2월 22일)에 마현리 자택에서 꼿꼿한 자세로 이승을 마감했다. 75세였다. 그가 유배지에서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보낸 편지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다. 거기에 ‘남자의 길’이 쓰여 있다. 아침에 햇볕을 받는 쪽은 저녁에 그늘이 먼저 들고, 일찍 핀 꽃이 일찍 진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쉬지 않는다고도 했다. 대장부는 언젠가 가을 하늘에 매(鷹)가 솟구쳐 오르는 기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남자의 인생’은 나훈아의 노래인데, 강문경의 ‘아버지의 강’과 신유의 ‘시계바늘’, 조항조의 ‘사나이 눈물’, 고영준의 ‘남자의 길’이 오버랩된다. 여자의 인생은 어떻게 해야 하나. 참을 수가 없도록 가슴이 아파도 참아야만 하나. 헤아릴 수 없는 밤을 홀로 새우며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여야만 하나. 나훈아의 다음 노래는 70세에 뒤돌아보는 ‘여자의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그는 1966년 ‘천리길’로 데뷔한 뒤 40여 년간 인기 정상을 누렸다.
‘남자의 인생’을 흥얼거리면서 생각을 가다듬는다. 인생은 온정(溫情)에서 냉정(冷情)으로 이어지는 세월이다. 방랑시인 김삿갓(1807~1863)과 나훈아(1947~)는 동질(同質)이 참 많다. 김삿갓이 방랑길 어느 마을에 닿았다. 방물장수 아주머니가 연지·분·동백기름·향수를 놓고 70세 노파에게 흥정을 한다. 연지와 분을 사지 않겠는가, 동백기름과 향수도 있어요. 노파는 아무 대답도 없이 빗으로 허연 머리카락만 빗고 있다. 인생은 시(時間)와 때(節氣)가 있음이다. ‘남자의 인생’의 가혼(歌魂)이다.
유차영 < 한국콜마 전무·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