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비(非)은행 기술기업이 기존 은행들의 뱅킹 업무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중국 알리페이와 위챗, 미국 페이팔과 벤모, 스퀘어 등은 신기술을 도입해 뱅킹업무와 관련한 부정행위 및 아이디(ID) 도용 등 디지털 환경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을 빠르게 해결했다. 이들 기업은 서버 두 대만 있으면 금융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다.
기존 은행들은 디지털 전환 작업을 하기도 전에 기존 채널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 거대한 ‘레거시 시스템’의 제약, 준법 감시를 기반으로 한 무관심과 저항, 경영진의 지원 부족 등과 싸워야 한다. 2025년께 일상적인 뱅킹 경험은 혁신을 거친 기존 은행보다 기술 스타트업 영향을 크게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금융계 미래학자로 이름이 높은 브렛 킹은 신작 《뱅크 4.0》에서 비은행권 기술기업들이 은행업을 본격적으로 바꾸는 시대를 성찰한다. 저자는 앞서 일상적인 은행업무에서 인터넷이 다른 모든 뱅킹 채널을 앞지르는 시대를 고찰한 《뱅크 2.0》, 모바일 뱅킹이 확산하는 상황을 분석한 《뱅크 3.0》을 내놨다.
그는 신간에서 “금융업무의 파괴적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며 “2025년께 기술사업자들이 가장 큰 예금 수납기관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예금수납 규모를 효과적으로 찾아낸 핀테크 기업들과 알리바바, 텐센트, 구글, 아마존, 애플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유력한 후보다. 최근 뱅킹사업에 뛰어든 아마존은 수십억 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했지만 고객 획득 비용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중국, 인도, 케냐 등에서는 기술기반 기업들이 은행 지점을 통한 기존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결제, 소액대출, 저축 등을 공략했다. 저자는 “대부분 은행이 전통적인 뱅킹 모델에 그저 기술만 추가할 뿐, 디지털금융의 핵심을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경쟁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IT기업들의 진격으로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람들은 뱅킹 서비스가 필요하면 언제 어디에서나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접촉이 많아지면서 뱅킹의 혁신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뱅킹의 미래를 정확히 판단해 대처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해줄 만한 책이다. (장용원 옮김, 한빛비즈, 408쪽, 1만8000원)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