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키트(반조리 간편식) 국내 1위 기업 프레시지, 10~20대의 마켓컬리로 불리는 쿠캣, 누적 사용자수 2500만명에 이르는 도도포인트의 스포카, 에버콜라겐으로 유명한 건강기능식품업체 뉴트리…
이들 ‘잘나가는’ 스타트업(창업기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GS홈쇼핑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는 점이다. 이들 뿐이 아니다. GS홈쇼핑이 지금까지 투자한 스타트업은 600여곳에 달한다. 누적 투자액은 약 3600억원. TV 홈쇼핑이 전문 벤처투자사 못지 않게 스타트업 투자에 열심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박영훈 GS홈쇼핑 부사장(사진)은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라고 말했다. 의외였다. 매년 수 천억원씩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는 대기업이 ‘생존’을 걱정하고 있었다.
박 부사장은 GS홈쇼핑에서 벤처투자를 총괄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모니터그룹, 엑센츄어 등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한 뒤 2014년 GS홈쇼핑에 합류했다.
GS홈쇼핑의 스타트업 투자는 단순히 돈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이들의 혁신적인 사업 방식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에 더 가깝다. 그는 “미국에선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생긴 지 20~30년 밖에 안 된 기업이 GM, IBM 같은 전통적 대기업을 제치고 시가총액 맨 꼭데기에 올라섰다”며 “한국에서도 조만간 벌어질 일”이라고 말했다. 이미 이런 조짐이 있다고 했다. 최근 시가총액 10위 안에 들어온 네이버, 카카오 등이 이름을 올린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박 부사장은 “대기업이 기존 사업만 열심히 해선 자연히 도태될 것”이라고 했다. GM 사례를 들었다. 누구보다 차를 잘 만들었지만 지금은 추락하고 있다. 반면 테슬라는 전기차를 들고 나와 승승장구 중이다. 리스크를 감내하는 용기, 새 사업에 도전하려는 의지, 도전과 혁신에 민감한 기업문화 등 모든 면에서 테슬라가 GM을 압도했다는 것이다.
그는 “GS홈쇼핑도 언제든 빠르게 추락할 수 있다”고 했다. 회사 내부에선 이 문제를 10여년 전부터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벤처투자였다. 내부에서 혁신이 어렵다면 스타트업 처럼 혁신적 DNA를 가진 기업에 투자하고, 이들의 혁신을 이식하는 방법을 택했다. 박 부사장은 이를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고 불렀다.
지난 5년 간 진행한 투자는 벤처와 관계를 맺는 한 수단이었다. 투자기업의 혁신을 성과로 내는데 현재는 주력하고 있다. 그 성과는 우선 상품의 변화다. 스타트업 상품을 GS홈쇼핑이 팔아준다. 바램시스템의 반려동물 관리 로봇이 대표적이다. 원래 이 회사는 유도탄의 위치제어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로봇에 적용했다. 반려동물은 이 로봇을 따라다니며 운동한다. 사료도 시간마다 내준다. GS홈쇼핑은 바램시스템 로봇 출시를 계기로 별도의 반려동물 쇼핑 코너를 만들었다.
좋은 벤처 기술은 GS홈쇼핑에 적용시켰다. GS홈쇼핑의 온라인몰 GS샵에는 소비자들의 동선을 파악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이 탑재돼 있다. 사람들이 어떤 상품을 많이 보는 지, 어느 곳을 주로 클릭하는 지, 얼마나 머무르는 지 등을 분석한다. GS홈쇼핑이 투자한 스타트업 기술이다.
벤처 투자를 통한 가장 큰 소득은 내부 조직원들의 변화였다. 박 부사장은 “벤처 기술을 적극 수용하고, 이들의 혁신을 받아들이는 유연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박 부사장은 “돈 벌려고 투자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대박도 터진다”고 했다. 그는 “미국 바이오 테크 기업 젤토란 기업에 투자했는데, 평가이익이 10배 이상 됐다”고 말했다. 투자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그는 “새벽배송 사업이 유망해 보여서 마켓컬리와 헬로네이처 두 곳에 대한 투자 검토를 했었다”며 “마켓컬리는 당시 지분관계가 다소 복잡해 헬로네이처에 투자했는데 마켓컬리가 훨씬 빠르게 성장했다”고 했다. GS홈쇼핑은 헬로네이처 지분을 SK그룹에 매각, 큰 차익을 남겼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