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자 2m 앞 1살 아들 놓고 혼자 대피한 母 무죄

입력 2020-06-11 14:41
수정 2020-06-11 14:43

집에 불이 나자 1살(생후 12개월) 아들을 놓고 혼자 대피한 20대 여성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이대연)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24)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4월 안방 침대에 아들을 혼자 재워놓고 전기장판을 켜 놓고 안방과 붙어 있는 작은 방에서 잠들었다.

아들이 우는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A씨는 불이 난 것을 확인하고 현관문부터 열어 연기를 빼려고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A씨는 1층까지 내려가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사이 불길이 번져 다시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A씨의 아들은 숨졌다. 검찰은 A씨가 고의로 아들을 구조하지 않았다며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화재 시뮬레이션 결과 현관문을 개방했을 때 가시거리가 30m 정도로 시야가 양호했고, 피해자가 위치했던 침대 모서리와 방문 앞 온도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높지 않았다"며 A씨가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화재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의 거리는 2m에 불과했고, 이런 상황에서 아기를 데리고 나온 다음 도망치는 게 일반적임에도 혼자 대피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이에 A씨의 변호인은 A씨가 잘못 판단해 아이를 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를 유기했다거나 유기할 의사가 있었던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A씨 측은 "행동에 과실이 있었다고는 인정할 수 있으나, 유기 의사가 있었다면 현관문을 열어 연기를 빼 보려 하거나 119에 신고하고 행인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행동을 할 이유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손쉽게 피해자를 구조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며 "사람에 따라서는 도덕적 비난을 할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