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중소기업 연구진 38명이 모인 단톡방의 실시간 소통 위력이 컸습니다.”
김종호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지원센터장(사장)은 삼성전자 엔지니어와 솔젠트, 사출·금형기업 등의 기술전문가 38명이 24시간 서로 머리를 맞대고 중소기업이 맞닥뜨린 기술적 난제를 풀어나간 경험을 이같이 소개했다. 10일 대전 솔젠트 본사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중앙회, 삼성전자 주최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형 스마트공장 성과 보고회’ 자리에서다.
감염병 진단키트를 생산하는 연매출 61억원 규모 솔젠트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해외에서 주문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와 높은 수작업 의존도 등으로 수출은 한계에 부딪혔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기술 과외’로 6주 만에 생산능력을 73% 높이고, 불량률을 40% 낮추는 데 성공했다. 솔젠트는 세계 40여 개국과 장기 계약을 앞두고 있다. 석도수 솔젠트 대표는 “삼성의 열정과 속도를 체감했다”며 “대기업과의 상생 협력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절감했다”고 말했다.
獨 수입품 100% 국산화 성공
솔젠트는 코로나19 사태로 ‘특수’를 맞았다. 미국과 유럽, 캐나다, 동남아시아 등에서 주문이 쏟아졌다. 지난달부터 기존 진단키트 생산량의 5배, 8월부터는 20배에 달하는 물량을 수출할 예정이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긴급사용 승인도 받았다.
하지만 진단키트용 플라스틱 튜브용기를 납품해오던 독일 업체가 코로나 사태에 따른 자국 내 수요로 갑자기 수출을 중단하면서 수주가 무산 위기에 처했다. 자재 공급이 막힌 데다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지 못해 납기일을 맞추기 어려웠다. 솔젠트는 중기부와 중기중앙회, 삼성전자에 긴급하게 SOS를 쳤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7일 김 사장이 직접 참여하는 킥오프미팅(첫 회의)을 열었다. 이어 삼성전자의 제조혁신 전문가 12명을 솔젠트에 파견해 6주간 상주시키며 현장 혁신에 나섰다. 김 사장은 “당시 품질 좋은 한국산 진단키트를 공급받기 위해 세계 각국이 인천공항에 전용기를 대기해놓고 있던 때였다”며 “삼성전자가 수십 년간 치열하게 경쟁하며 터득했던 노하우를 중소기업의 당면한 어려움에 어떻게 접목할까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삼성은 독일이 수출을 중단한 튜브용기를 100% 국산화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도면도 없는 상태에서 기존 수입품의 겉모습만 보고 비슷한 튜브를 개발해내는 데 성공했다. 튜브 뚜껑 내 용액이 새는 것을 막는 고무링이 들어가는데, 이물질이 잘 들러붙는 고무 소재 특성 때문에 불량률이 40%에 달하는 것도 문제였다. 삼성전자는 첨단 금형 기술을 활용해 고무링 없이도 용액이 새지 않도록 ‘일체형’ 튜브를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제품 불량률은 사실상 0%가 됐다.
생산공정도 대수술
솔젠트 생산 공정에도 ‘삼성전자식 혁신’이 이식됐다. 배합, 조립, 검사, 라벨 부착, 이물 검사, 검수 후 포장 등으로 이어지는 기존 공정은 수작업으로 관리돼왔다. 현시점의 수주 가능 물량을 예측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삼성은 원·부자재, 반제품, 완제품 등에 모두 바코드를 붙여 태블릿PC 한 대만으로 언제 어디서나 재고관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병목현상 없이 물 흐르듯 공정이 이뤄지도록 컨베이어 생산체계도 도입했다. 강성천 중기부 차관은 “삼성전자의 노하우가 돋보였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중기부, 중기중앙회와 손잡고 매년 100억원씩 총 1000억원을 투입해 2500개 중소기업에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스마트공장 지원은 2018년 8월 삼성전자가 발표한 180조원 규모 상생계획에 포함됐던 사업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각별히 챙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코로나19 관련 긴급 지원’ 발표 때 “국민의 성원으로 성장한 삼성은 지금과 같은 때에 마땅히 우리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마스크 대란’ 발생 당시 삼성전자가 마스크 생산업체 네 곳을 대상으로 기술과외를 해 생산능력을 51% 개선하는 성과를 거두자 이 부회장은 상생 노력을 더욱 확대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대전=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