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반기 든 英 보다폰 "화웨이 퇴출 안돼"

입력 2020-06-10 17:15
수정 2020-06-11 01:43
세계 2위 통신사인 영국 보다폰이 보리스 존슨 행정부의 ‘화웨이 배제’ 방침을 정면 비판했다.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 제품의 사용을 제한하면 글로벌 5G(5세대) 통신 산업을 선도하겠다는 영국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압박으로 영국, 캐나다 등 동맹국들이 화웨이 제재에 합류하고 있지만 보다폰 측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비 교체 비용, 기술에 투자해야”

스콧 페티 보다폰 최고기술책임자(CTO)는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영국의 통신사들이 수십 년간 써온 화웨이 장비를 다른 회사 제품으로 교체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며 “정부는 특정 업체를 배제하기보다 영국의 5G망 확대와 기술 제고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폰은 영국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 통신사다. 전 세계 가입자 수는 6억2500만 명으로 중국 차이나모바일(9억5000만 명)에 이어 2위다. 페티 CTO는 “통신사는 한 곳의 장비업체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며 “화웨이를 배제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다폰과 EE, 3텔레콤 등 영국 통신사들은 유럽에서 스위스 다음으로 지난해 7월 화웨이 장비를 활용해 5G 초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1월 영국 정부가 화웨이를 ‘고위험 공급업체’로 지정하고 핵심장비에서 빼라는 지침을 내리면서 막대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각 사가 기존 장비 교체 비용으로만 5억파운드(약 7600억원) 이상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영국 정부는 5G 핵심장비에서 화웨이 제품을 쓰지 못하게 하고, 비핵심 부문에서 쓰더라도 전체의 35%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 여기에 존슨 총리는 지난달 말 “2023년까지 영국 인프라 구축사업에 중국이 관여할 여지를 ‘제로(0)’ 수준으로 축소하겠다”며 비핵심장비에서도 화웨이를 퇴출시키는 방침을 내놨다.

로이터는 이에 따라 영국 정부가 한국 삼성전자, 일본 NEC와 5G 장비 조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정부는 5G 통신을 차세대 기간산업으로 키운다는 목표 아래 2020~2021년 통신사들에 7억4000만파운드(약 1조1200억원)의 인프라 구축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화웨이는 100% 민간 기업”

미국은 화웨이의 통신장비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지난해 5월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했다. 동맹국에도 화웨이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화웨이는 안보 위협 논란에 대해 계속해서 반박해 왔다. 최근에는 영국에서 지난 수십 년간 통신망 건설에 기여한 공로를 알리는 대규모 광고를 시작했다. 빅토르 장 화웨이 부회장은 “화웨이는 직원들이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민간 기업이며 통신망에서 확보한 정보를 중국 정부에 제공한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미국 기술조사업체 그레이비서비스 등에 따르면 화웨이는 5G 운영에 필수적인 표준기술특허 1658건 중 가장 많은 302건(19%)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256건·15%), LG(228건·14%), 노키아(202건·12%), 퀄컴(191건·11%), 에릭손(152건·9%)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