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0일 고(故)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 현장을 찾아 헌화했다. 현직 대통령이 권위주의 시대 인권 탄압의 상징인 이곳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던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에서 열린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후 509호 조사실로 이동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7년 박종철 열사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물고문에 의해 숨진 장소다. 다수의 국가폭력이 자행됐던 대공분실은 이제 '민주인권기념관'이 돼 민주주의 발전사를 기억하는 장소가 됐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기념식을 마친 문 대통령 내외는 건물 후문으로 이동해 유동우 민주인권기념관 관리소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유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1976년 처음 지어진 이 건물은 민주화 운동으로 연행된 사람들로부터 고립감과 공포감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설계됐다.
유 소장은 "연행돼 오는 사람들이 통과하는 모든 문은 5층 조사실 안에 들어갈 때까지 모든 게 철문으로 돼 있다"며 "마찰음과 굉음이 눈을 가린 상태에서 들으면 아주 공포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 소장은 문 대통령 내외 앞에서 철문을 밀어 당시의 공포스러웠던 소리를 재연했다.
이후 건물 안으로 들어온 문 대통령 내외는 1층에서 바로 5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나선형 형태로 된 철제 계단 앞에 섰다. 총 72개 계단으로 이뤄졌고 5층까지 올라가려면 세 바퀴를 돌아야 하는 매우 가파른 형태였다.
유 소장은 "눈을 가린 상태로 끌려 올라가게 된다"며 "떠밀리면 안 되니까 앞에서 수사관 한 사람이 옷깃이나 옷이 없는 경우에 머리끄덩이를 잡고 올라가고, 또 떨어지지 않게 뒤에 허리춤 있는 데를 뒤에서 받치면서 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나선형 계단은 2층, 3층, 4층으로는 나가는 통로가 없다"며 "여기 발 디디는 순간 5층까지 끌려 올라가서 바로 조사실로 올라가게 된다"고 부연했다.
박종철 열사의 고문 현장인 509호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물고문했던 욕조를 지그시 바라봤다. 직접 안개꽃과 카네이션, 장미꽃을 준비한 김 여사는 문 대통령과 함께 박종철 열사 영정 앞에 헌화 후 묵념했다.
문 대통령은 고문 현장에 대해 "이 자체가 처음부터 공포감이 오는 거다. 물고문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철저하게 고립감 속에서 여러 가지 무너뜨려 버리는 것이다"고 했다.
설명을 듣던 김 여사도 한숨을 연거푸 내쉬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설명 도중에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박종철 열사의 형인 박종부씨, 민갑룡 경찰청장,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함께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