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통화량 3000兆 돌파…저금리에 넘치는 유동성

입력 2020-06-10 14:00
수정 2020-06-10 14:13

현금과 예·적금, 단기수익증권 등 시중 통화량이 사상 처음 3000조원을 돌파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리면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3000조원에 달하는 유동성이 주식을 비롯한 자산시장을 달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중 통화량, GDP 1.5배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4월 중 통화 및 유동성’ 자료를 보면 통화량(M2·말잔)은 4월 말 기준 3011조4312억원으로 집계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기 직전인 지난해 말에 비해 3.4%(97조8216억원) 늘었다. 역대 1~4월 증가율 기준으로 2010년(3.4%) 후 최고치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만기 2년 미만의 정기 예·적금, 만기 2년 미만의 금융채,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다. 경제주체들이 유동성을 얼마 만큼 쥐고 있는 지를 나타내는 대표 지표로 꼽힌다.

시중 통화량은 2005년 7월(1006조7937억원)에 사상 처음 1000조원을 돌파했고 9년이 지난 2014년 6월(2000조1020억원)을 넘어섰다. 올해 4월에 처음 3000조원 웃돌았다. 시중에 풀린 현금의 증가속도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의미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시중 통화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제 수준과 비교해 통화량 증가속도가 더 빠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9년 명목 국내총생산(GDP·1919조399억원) 지난 4월 시중 통화량 비율은 156.9%로 역대 가장 높았다. 명목 국내총생산 대비 시중 통화량 비율은 2010년~2017년에 120~138%를 오르내리락했다. 하지만 2018년 말 142.3%, 지난해 말 151.8%로 오름세를 보였다. 보유 주체별로 살펴보면 가계가 보유한 통화량은 1545조8225억원, 기업은 834조6724억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각각 3.1%(46조1066억원), 3.8%(30조8769억원) 늘었다. 가계보다 기업의 시중 통화량 증가율이 높았다.

시중 통화량 가운데 현금과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요구불예금·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F·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단기금융상품을 합친 단기자금 잔액은 1118조8988억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7%(73조9240억원) 늘었다.

◆풀린 유동성, 자산시장 거품 키우나

시중 통화량이 올들어 빠르게 늘어난 것은 한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올 들어 기준금리를 대폭 낮춘 영향이다. 한은은 올해 초 연 1.25%였던 기준금리를 두 차례에 걸쳐 인하해 사상 최저인 연 0.5%로 낮췄다. 금리인하는 물론 한은은 올 들어 3조원어치 국채와 17조원어치 환매조건부채권(RP)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현금을 풀었다.

하지만 넘치는 유동성이 소비·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가계·기업 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은 탓이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77.6으로 장기평균치(2003~2019년)인 100을 크게 밑도는 것은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0월(77.9)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한은이 발표한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49를 기록해 2009년 2월(43) 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올해 1분기 민간소비는 전년 대비 6.5% 감소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분기(-13.8%) 후 가장 크게 줄었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0.2%에 그쳐 2019년 1분기(-9.1%) 후 최저치다.

시중에 널린 유동성은 소비·투자보다는 주식을 비롯한 자산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스피 시장의 올해(1월2~6월9일) 하루 평균 거래액은 9조874억원으로 연간 기준 역대 최대였던 2011년 거래액(6조8631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코스피지수도 전날 2192.64에 마감하며 지난 3월19일 기록한 연중 최저점(1457.64)에 비해 50.4% 뛰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