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정부 부처의 고위 공무원이 뜻밖의 얘기를 들려줬다. “지난달 29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산경장)가 열렸는데, 한국경제신문 때문에 회의 일정이 뒤로 밀릴 뻔했다”는 것이다. 한경이 산경장 회의에서 두산중공업에 1조2000억원 지원안을 검토한다고 하루 전날 보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산중공업 지원안이 미리 보도된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산경장 일정’이 알려진 점에 관계부처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기사를 오보로 만들기 위해) 며칠 뒤에 열자”고 수선을 떨었다는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산경장 회의의 전신은 청와대 서별관 회의다. 박근혜 정부 중반까지 중요한 경제정책의 틀을 잡는 비공개 회의였다. 그런데 2015년 한진해운 파산 사태로 밀실 회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2016년 6월부터 산경장 회의 체제를 갖추게 됐다.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과 산업은행장, 수출입은행장 등 관련 부처 및 기관의 수장들이 모두 모인다. 회의가 끝나면 어떤 내용을 논의해 결정했다는 보도자료도 배포한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비상경제회의조차 수일 전에 일정이 공개된다. 그런데 산경장만큼은 ‘깜짝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게 관계부처 공무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보도자료가 나오기 전까지 산경장이 열리는 것을 절대 보안 사항으로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윗분’들이 싫어한다”는 것이 이유 아닌 이유로 거론된다. 언론을 건너뛰고 국민에게 직접 홍보하기를 선호하는 현 정부 스타일이 반영돼 있는지도 모르겠다.
반발이 클 수도 있는 민감한 내용이 거론되는 만큼 그 내용이 새 나가지 않도록 신중하게 회의를 하고 싶은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엽말단에 불과할 수 있는 정보인 회의 일정 자체를 감추느라 애쓰는 것은 모양이 우습다. ‘윗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봉건적인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바깥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안다. 어쩌다 그런 점을 지적하면 “(중요한 결정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보도자료나 잘 받아 쓰라”는 식으로 면박이 돌아올 때도 있다.
하지만 공무원에게 그런 문제를 결정하도록 위임한 것은 국민이다. 정보 보안에만 신경 쓰다가 국민의 알 권리를 소홀히 한 것을 반성하는 취지에서 만든 게 산경장 체제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국민이 회의가 언제 열린다는 것조차 몰라야 할 이유는 전혀 없고, 그런 문제에 집착하는 건 공무원들뿐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