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8일 남측의 연락사무소 통화 시도에 한때 불응했다. 남북한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안정적인 대화·소통 채널이 일시적으로 단절된 것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설치된 지 1년9개월 만에 처음이다.
북한의 이날 일시적인 통화 거부는 ‘언제든지 남측과의 연락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겁박성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최근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강력 반발하며 남북 관계 단절의 첫 단계로 연락사무소 폐쇄를 언급했다. 미·북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고 남북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이다.
연락 단절했던 北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오늘 오전 연락사무소는 예정대로 북한과 통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북측이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이 전화 연락에 응하지 않은 건 2018년 9월 연락사무소 개소 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날 오후 5시 이뤄진 통화에는 응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오후 공동연락사무소 남북 연락 협의는 평소대로 이뤄졌다”며 “오전 연락 협의에 응하지 않은 데 대해 북측은 별도의 언급이 없었다”고 전했다.
연락사무소는 2018년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의 결실이다. 365일 24시간 소통 가능한 협의 채널인 만큼 안정적인 남북 소통의 토대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곳엔 남북 인력이 상주 근무하며 일상적으로 대면 소통을 했다. 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지난 1월 30일 남북 양측은 개성에 상주하던 인력을 철수시켰다. 연락사무소 내 대면 운영은 중단됐지만 특별한 현안이 없더라도 평일 오전 9시와 오후 5시 두 차례에 걸쳐 전화와 팩스로 소통해왔다.
정부는 이날 남북 간 연락 단절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오전에 전화를 받지 않았고, 오후에 받았다는 사실 외에 추가적으로 설명할 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냉랭한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물꼬를 트는 데 노력해왔다. 지난 4일에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불쾌함을 드러내자 4시간여 만에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제정을 공식화했다. 김여정의 담화 발표 이튿날 대남 전략을 총괄하는 기구인 통일전선부가 담화를 통해 연락사무소 폐지와 함께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완전 철거,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를 언급하며 비난 수위를 높였을 때도 ‘남북 간 합의사항을 이행해나가야 한다’는 짧은 입장을 내놓으며 확전되지 않는 쪽으로 관리했다.
연락사무소 폐쇄 가능성 배제 못해
북한의 이날 오전 통화 거부는 남북 대화 복원의 상징인 연락사무소를 언제든 남북 관계와 연관지어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남북 관계가 틀어질 경우 북한이 우리 측 연락에 응하지 않고 연락사무소 건물 자체를 폐쇄하거나, 연락사무소 내 남측 집기·서류 등을 회수하라고 요구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지난해 3월에도 연락사무소 근무자들이 돌연 ‘상부 지시’라며 철수했다가 사흘 뒤 복귀했었다.
남북 간 긴장감을 조성해 협상력을 끌어올리려는 북한의 노림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여파와 오는 11월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북한과의 대화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북한이 지난해부터 정면돌파를 선언하며 경고했던 것을 하나둘 실천에 옮기며 남북 관계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며 “향후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와 함께 무력 도발까지 긴장 수위를 높여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