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숭동 대학로 상권에 있는 대지면적 74㎡(약 22평) 3층짜리 ‘꼬마빌딩’은 지난 1월 25억8000만원에 팔렸다. 3.3㎡당 가격이 서울 강남 한강변 새 아파트와 맞먹는 1억1000만원 수준이다. 매수인은 강남에 사는 30대 중반 남성. 이 매수인은 빌딩 가격의 60%가량을 대출받았다. 한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고가 아파트는 대출 규제가 촘촘한 반면 빌딩은 시세의 60~70%까지 대출이 가능해 투자하기가 쉽다”며 “꼬마빌딩은 요즘 대기 매수자들이 줄을 설 정도”라고 말했다.
역대 최저 수준인 저금리 시대를 맞아 시세 상승과 임대 수익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꼬마빌딩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꼬마빌딩은 통상 연면적 99~330㎡(30~100평)의 5층 미만 건물을 가리킨다.
몸값 치솟는 꼬마빌딩
8일 토지건물 정보 플랫폼 밸류맵에 따르면 서울 지역 꼬마빌딩 매매가는 2015년 대지면적 3.3㎡당 평균 3242만원이던 것이 지난달 말 기준 평균 5549만원으로 올랐다. 이 기간 상승률이 71.1%에 이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투자자들의 관망세가 짙던 올 상반기에도 꼬마빌딩 가격은 강세였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근 대지면적 74㎡짜리 꼬마빌딩은 지난 4월 24억5000만원에 매각됐다. 리모델링을 하기 전인 1년 전 가격(13억5000만원) 대비 81% 상승한 것이다.
서울 신사동 이면도로에 있는 4층짜리 꼬마빌딩(대지면적 220㎡)은 2014년 3.3㎡당 거래가격이 5078만원이었는데, 올 2월 3.3㎡당 8164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꼬마빌딩은 거래량은 늘지 않았지만 가격은 오르고 있다. 서울 지역 꼬마빌딩 거래 건수는 2015년 1059건에서 2016년 1310건으로 늘었다가 이후 2017년 1036건, 2018년 724건, 작년 707건으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올 들어 5월 말까지 거래량도 233건에 그쳤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아파트 등 일반적인 부동산은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가격이 오르지만 꼬마빌딩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꼬마빌딩은 공급과 매물이 한정적이어서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30~40대 매수자 늘어
작년 ‘12·16 대책’ 이후 15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는 대출이 원천 금지된 것도 꼬마빌딩이 각광받는 이유다. 꼬마빌딩도 2018년 6월부터 임대업이자상환비율(RTI) 등을 적용받고 있지만 주택보다는 규제가 훨씬 약한 편이다. 한 빌딩 전문 중개업 관계자는 “꼬마빌딩은 여전히 시중은행에서 담보인정비율(LTV)을 최고 60~70%까지 적용해준다”며 “법인은 매입가의 8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인기가 많은 꼬마빌딩은 10억~50억원 규모다. 밸류맵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전체 빌딩 거래량의 48%가 이 금액대에 몰렸다. 이 외에 10억원 미만이 19%, 50억~200억원이 29%를 차지했다.
50억원 미만인 꼬마빌딩은 자산가뿐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 대기업 은퇴자, 젊은 사업가 등도 대출을 끼면 충분히 노려볼 수 있다. 가족, 친구 등이 함께 투자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 1월 거래된 서울 용산구의 33억원대 3층짜리 꼬마빌딩은 형제 4명이 4분의 1씩 지분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속이나 증여용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임성환 ABL생명 WM센터장은 “과세표준 30억원을 초과하는 부분은 상속세율 50%를 적용받는다”며 “꼬마빌딩을 대출을 낀 상태로 사서 증여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이렇게 ‘부담부(負擔附) 증여’를 하면 대출 부분에 대해서는 증여세가 아니라 양도세를 적용받아 일반적인 증여보다 세금을 줄일 수 있다.
꼬마빌딩 매수 연령층은 은퇴를 앞둔 50대가 많지만 30~40대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 대형은행 PB는 “30대 정보기술(IT) 벤처사업가들이 회사 지분을 팔고 빌딩 매매를 의뢰하는 사례도 있다”며 “연령이 높은 고객은 안정적인 강남을 선호하지만 젊은 층은 미래 가치가 높은 곳에 공격적으로 투자한다”고 했다.
공실 리스크는 꼼꼼히 따져야
부동산 전문가들은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은행에 돈을 맡기기보다 꼬마빌딩을 사겠다는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공실 위험은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오피스와 상가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되고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리얼티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서울 지역 50억원 미만 빌딩의 매매대금 대비 임대 수익률은 연 1.1%로 집계됐다. 재건축 부지, 리모델링 예정지 등을 빼면 임대 수익률이 연 4%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에는 이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은 “꼬마빌딩에 대한 관심이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높아졌고 가격도 많이 올랐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는 미지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꼬마빌딩에 투자할 경우 안정적인 임대수익이 가능한 역세권이나 차별화된 상권 지역을 노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