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2년 만에 감산을 단행한다. 현대제철이 전기로 열연공장을 멈춘 데 이어 업계 1위 포스코마저 일부 설비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철강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반면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은 급등하면서 철강업계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포스코, 광양 3고로 가동 연기
8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최근 개·보수를 마친 광양 3고로(용광로)의 가동 시점을 연기하고 오는 16일부터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의 일부 생산설비를 멈추기로 했다.
창사 이후 처음으로 유급휴업도 시행한다. 해당 사업장 직원들은 유급휴업에 들어가 평균 임금의 70%를 지급받게 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희망퇴직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노사 간 공감대를 바탕으로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포스코가 고로 보수가 끝난 뒤 재가동에 들어가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감산에 돌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창사 이래 처음으로 감산을 단행했다. 해외에서는 세계 최대 철강업체 아르셀로미탈을 비롯해 일본제철, US스틸 등 세계 주요 철강사가 이미 감산에 나섰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3월 중순 이후 유럽 25개 철강사, 미국 12개 철강사가 가동을 중단했다. 국내에서는 현대제철이 지난 1일 충남 당진제철소 전기로 열연공장 가동을 멈췄다.
철강업계에서는 설비 가동 중단을 고육지책으로 표현한다. 장치산업 특성상 설비를 한번 멈추면 다시 원상복구하는 데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철강사들이 재고를 떠안을지언정 가동 중단은 피하려 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의 1분기 실적 발표 때만 해도 광양 3고로 가동 연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며 “세계 최고의 생산 시스템을 갖춘 포스코마저 감산할 만큼 철강 시황이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내 철강재 생산량의 30%를 소비하는 최대 수요처인 자동차 등 전방산업의 수요 감소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1분기 세계 자동차 수요가 작년 1분기 대비 14% 줄고, 2분기에는 30%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철강업계는 작년 하반기부터 자동차용 강판 가격 인상을 시도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물거품이 됐다.
철광석 t당 100달러 돌파
원재료 가격 상승도 철강사에 부담을 주고 있다. 철광석 가격은 이달 5일 기준 t당 100.5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예년보다 20~30달러 높은 수준이다. 작년 8월 이후 9개월 만에 100달러 선을 넘어섰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올 2월 이후 원유 구리 등 대부분의 원자재 가격이 떨어졌지만 철광석 가격은 도리어 25% 급등했다. 철광석 강세는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과 호주의 생산 차질과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 기대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세계 철강사들이 잇따라 생산량을 줄이고 있지만 바오산강철 허베이강철 등 중국 철강사들은 고로 가동률을 높이며 ‘치킨 게임’에 나섰다. 중국산 열연과 철근 가격 상승은 국내 철강사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국내 철강사의 이익은 자동차 강판, 선박용 후판 등 고급 제품에서 나온다”며 “중국의 건설 경기 부양 기대가 철광석 가격 상승만 부채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는 2분기 최악의 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포스코의 2분기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62.1% 급감한 4046억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BNK투자증권은 1954억원까지 낮춰 잡았다. 작년 4분기 20년 만에 첫 분기적자를 기록한 현대제철은 세 분기 연속 적자가 예상된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