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뉴딜의 유혹과 교훈

입력 2020-06-08 18:08
수정 2020-06-09 00:1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기 시작한 지 4개월이 돼 간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했고, 그 결과 경제가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이번 경제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견될 정도로 피해의 정도가 막대하다. 이제 감염병 확산이 어느 정도 통제가 되는 듯해 조심스럽게나마 경제활동이 재개되고 있고, 이와 더불어 정부는 경제 회복을 위한 여러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중 ‘한국판 뉴딜’ 정책은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경제구조의 개혁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판 뉴딜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공황 이후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시행했던 뉴딜정책을 연상시키도록 준비된 듯하다. 흔히 알려진 바와는 달리 미국의 뉴딜 정책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우선 숫자상으로 본다면 뉴딜정책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대공황이 발생한 1929년 이후 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는 1939년까지도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의 실질생산은 1939년에도 추세선의 25% 아래에 머물렀고, 평균 근로시간은 가장 낮은 1933년 수준보다 약간 높아졌을 뿐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대공황 직후에 20%를 넘어섰는데 1939년에도 19% 근처에 머물고 있었고, 전쟁 수행을 위한 물자 수요가 크게 증가한 1943년에야 대공황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그러는 동안 공공부문의 일자리는 1932년 60만 개 근처에서 100만 개를 넘어 크게 증가했고, 미국의 국가부채는 두 배로 늘어났다.

미국의 뉴딜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한 재정지출이 주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나마 테네시강 댐 공사 등 토목사업을 통해 창출한 고용도 실업률을 낮추고 경기를 살리는 데 큰 효과가 없었다. 현대 경제에서 일시적인 토목공사를 통한 경기 부양은 그리 큰 효과를 가질 수 없고 이는 우리나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뉴딜 정책 중에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부분은 1933년의 전국산업부흥법(NIRA: National Industry Recovery Act)과 1935년 전국노동관계법(NLRA: National Labor Relations Act)을 통한 시장경쟁 유보정책과 임금 상승을 위한 친(親)노조 정책이다. 이들 법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된 최장 근로시간 규제와 최저임금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 정부는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가 시장의 과당경쟁이고, 그로 인해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졌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뉴딜정책의 일부로 기업들의 반(反)경쟁적인 행위에 대한 규제를 유보하고 동시에 노조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수용했다. 그 결과 뉴딜 시행 직후 3년간 미국의 11대 주요 산업이 생산한 재화의 가격은 뉴딜이 없었다면 실현됐을 수준보다 평균 23% 높게 유지됐고 임금은 25% 높게 유지됐다.

이런 정책적 접근은 결과적으로 민간의 투자가 회복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서 불경기를 오랫동안 지속시켰다. 전국산업부흥법이 물가 상승을 통해 디플레이션을 막았다는 일부의 주장은 경기회복 결과로 나타나야 하는 물가상승이 경기회복과는 무관한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것을 억지 해석한 것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다.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한 대책은 단기와 장기로 나눠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단기 대책은 우선 망하게 된 기업을 살리고 해고된 노동자들의 생계를 최저수준이라도 보존하는 부분에 집중돼야 한다. 우리나라 외환위기 시 그랬던 것처럼 일시적인 환율의 하락은 우리나라 통화의 구매력을 크게 낮춰 소득의 충격적 감소를 초래했지만 이로 인한 경쟁력의 확보는 빠른 경기 회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물가와 임금을 낮게 유지시키는 것은 경기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인위적으로 물가와 임금을 올리는 것은 오히려 경기 회복을 지연시켜 위기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