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은 유턴기업 무덤"…이래선 있는 기업도 못 지킨다

입력 2020-06-07 18:45
수정 2020-06-08 00:19
코로나19가 촉발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는 리쇼어링을 세계적 이슈로 부각시켰다. 우리나라도 유턴(U-turn) 보조금 신설, 세제 지원 요건 완화 등을 하반기 경제 정책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한경 보도(6월 6일자 A1, 3면)를 통해 드러난 기존 유턴 기업들의 실패 사례는 지금과 같은 규제 환경 속에서 인센티브 몇 개 추가하는 게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한다.

2015년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중소기업 거성콤프레샤를 기업회생절차로 내몬 것은 유턴 기업의 현실과 괴리된 각종 규제와 만연한 관료주의였다. “고용 인원 한 명당 보조금 1050만원을 지급하겠다”며 이 기업을 유치한 세종시는 국내 사업 경력과 담보가 없는 이곳에 수억원의 보증료 등이 필요한 보증보험증권을 요구했다. 유턴 MOU 체결 후 3개월 내에 40명을 고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보조금 지급도 거절했다. 이 회사는 “‘MOU 후 3개월 이내 고용’이란 조건은 어디에도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기업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가 2013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기업법)을 시행한 뒤 한국으로 돌아온 80곳 가운데 사업을 펼치고 있는 곳은 41개에 불과하다. 아홉 곳은 폐업하거나 투자를 철회했고, 나머지는 지지부진한 투자 절차를 밟고 있다. 그 결과 기업들 사이에서 “한국은 무덤”이라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다.

정부가 하반기 경제 정책에 담은 지원책 중에는 기존 유턴기업법보다 진일보한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다. 해외 사업장 청산 등이 없이 국내 설비를 증설하더라도 세 혜택을 주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해외 생산량의 50% 이상을 줄일 때만 해주는 세금 감면도 감축량에 비례해 감면하는 것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귀국을 꿈꾸는 기업이 극소수인 데다 이번 대책에는 경제계가 강력히 요구해온 노동 및 수도권 규제 완화 등이 빠졌기 때문이다. 리쇼어링은 고사하고 문재인 정부 들어 기업들의 ‘탈(脫)한국’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주52시간 근무제 같은 ‘갈라파고스 규제’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LG전자는 코로나 위기 와중에도 구미 TV 생산라인 2개를 인도네시아로 옮기기로 했다.

이제부터라도 경영 환경 개선을 위한 규제 혁파를 서둘러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좀처럼 깨지지 않는 관료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법에서 금지한 것을 제외한 모든 행위를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도입도 그런 점에서 고려할 때다. 지금처럼 시늉만 하는 ‘유턴 기업 지원’으로는 한국에 남아 있는 기업들조차 지키기 어려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