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독일에 방위비 불만…주둔 미군 9500명 감축 추진

입력 2020-06-07 18:04
수정 2020-06-08 01:3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독일 주둔 미군을 27%가량 감축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싼 이견이 핵심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된다. 미국과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도 미군 감축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5일 행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 3만4500명인 독일 주둔 미군을 오는 9월까지 2만5000명으로 9500명가량 줄이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또 임시배치와 순환배치되는 병력을 포함해 독일 주둔 미군 규모의 상한선을 2만5000명으로 제한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는 임시배치 및 순환배치 병력과 훈련 참가 병력까지 포함하면 독일 주둔 미군은 최대 5만2000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이 이번 작업을 수개월간 해 왔으며,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서명한 ‘각서’ 형식으로 지시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감축된 병력 중 일부는 폴란드와 다른 동맹국에 재배치되고 일부는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에서 미군 철수를 준비해 왔다. 유럽 주둔군을 줄이기로 한 건 예상 밖이다. 독일 국방부 고위당국자는 WSJ에 외교채널을 통해 소문을 들었지만 정부 차원에서 공식 통보를 받진 못했다며 “트럼프가 우선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당혹스러워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독일 주둔 미군 철수를 고려하는 배경으로는 우선 독일과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독일 등 ‘부자 나라’를 ‘안보 무임승차국’이라고 비난하며 방위비 인상을 압박해 왔다. 이에 독일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목표치인 2%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목표 시점은 2031년이다. 지난해 독일의 GDP 대비 방위비 비중은 1.36%였다.

최근 퇴임한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 미국대사는 그동안 독일이 방위비를 충분히 지출하지 않는다며 ‘미군 감축’ 가능성을 거론해 왔다. 미국의 반대에도 독일이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를 강행하는 것도 트럼프 행정부가 불만을 갖는 지점으로 분석된다.

독일 주둔 미군 감축은 유럽의 역학 구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앤드루 와이스는 뉴욕타임스에 “(독일 주둔 미군 감축은)러시아를 위한 큰 선물”이라고 했다.

한국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현재 한국에는 2만85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진통을 겪고 있다. 전직 국방부 관료인 제임스 타운젠드는 WSJ에 “다른 동맹국들은 ‘내가 다음일까’라고 묻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주한미군은 미 국방수권법에서 현행 2만8500명 이하로 줄이는 걸 제한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감축하기는 쉽지 않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