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챙기려던 복지부, 대세 '정은경'에 밀렸다

입력 2020-06-05 15:14
수정 2020-06-05 15:20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되는 과정에서 연구 기능을 보건복지부에 뺏기게 됐다는 논란이 발생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사실상 복지부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에 힘을 실어준 것이란 분석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5일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오늘 현재 질병관리본부 소속 기관인 국립보건연구원과 감염병 연구센터가 확대 개편되는 감염병연구소를 보건복지부 산하로 이관하는 방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현재 추진 중인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따르면 질본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되지만 국립보건연구원과 연구원 산하의 감염병 연구센터는 모두 보건복지부로 이관되게 된다.

바이러스 연구를 담당하는 연구원 43명 규모의 감염병연구센터를 복지부 산하로 옮겨 국립감염병연구소로 확대 개편하고 질병관리청에는 역학 조사와 검역 기능만 남겨둔다는 게 개정안의 핵심이다.

하지만 질본 정원은 907명에서 746명으로, 예산은 8171억원에서 6689억원으로 기존보다 줄어들게 된다. 질병관리청이 독자적으로 예산 편성과 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는 점만 빼면 오히려 기능과 역할이 더 축소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게다가 바이러스 연구는 질본의 핵심 역량인데 이를 담당하는 연구센터를 복지부로 옮긴다는 게 전문성 측면에서 과연 옳은 것이냐는 의문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많은 감염병 전문가들은 현재 입법 예고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문제가 많다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초대 질병관리청장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역시 특유의 차분한 어조로 현 개정안에 문제가 있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 본부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질병관리청 안에도 역학조사나 감염병 예방·퇴치와 관련한 정책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조직과 인력이 확충돼야 한다"고 말하면서 연구 기능을 보건복지부에 뺏기게 됐다는 논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감염병 전문가도 정 본부장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이재갑 한림대 의대 감염 내과 교수는 전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질병관리청 승격, 제대로 해주셔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올려 "질본 산하기관으로 연구 기능을 맡고 있던 국립보건연구원, 특히 감염병연구센터까지 복지부로 옮긴다는 계획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청으로 독립시켜준다면서 정책 연구 기능을 복지부로 떼가 버리면 질본은 감염병 사태가 터질 때마다 뒷수습을 하는 역할밖에 할 수 없다"며 "흩어져 있는 감염병 정책 기능을 질병관리청으로 모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한 문 대통령이 입법 예고된 개정안의 시행 전에 긴급 지시 형태로 전면 재검토를 주문하면서 사실상 복지부보다 정 본부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복지부도 진화에 나섰다. 임인택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국립보건연구원은 감염병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니다. (복지부 산하로 옮겨와야) 줄기세포 연구 등 전체적인 바이오헬스산업 기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