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韓, 세계 주요국 중 유일하게 M&A시 '소액주주 보호' 없는 나라"

입력 2020-06-05 10:36
수정 2020-06-05 10:38
≪이 기사는 06월04일(07:2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우리나라의 회사법은 지배지분 매각을 통한 기업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권리에 대해 아무런 보호수단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의무공개매수제도(mandatory takeover bid rule)나 매수청구권(sell-out right) 제도 등의 도입을 검토해 볼 때입니다."

법무법인 세종에서 M&A 담당 변호사로 일하다가 최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긴 정준혁 교수는 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러한 주장이 담긴 논문 '의무공개매수 제도의 기능과 도입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증권법학회에 게재해 지난 5월19일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그는 "국내 M&A는 대부분 합병이나 영업양수도 대신 지배주주가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며 "이 과정에서 지배주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지만 소액주주는 회사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데도 주식을 팔 기회를 얻지 못하고 회사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선 이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전 세계로 보면 우리나라가 '예외'에 해당한다. 1972년 영국이 처음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도입한 이래 우리나라와 미국 대부분의 주를 제외한 세계 거의 모든 주요 국가에서 이 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구 증권거래법에 이를 도입했으나 약 1년만에 폐지했다. "당시는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신속한 M&A를 촉진하기 위해 이를 폐지한 것이므로, 한국만의 M&A 실무가 나름대로 정립된 지금은 제도를 재도입하는 것을 논의할 여건이 조성됐다"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정 교수는 "미국은 우리처럼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두지 않고 있는 대신 회사를 약탈할 의도를 가지는 자에게 지배지분을 팔 경우 (기존) 지배주주가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나름대로 소액주주를 보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은 대상 회사의 이사회가 포이즌 필 등 다양한 경영권 방어 제도를 통해 주주 보호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는 '이사회 중심주의'로 문제에 접근하기 때문에, 이사회가 주주총회 승인 없이 경영권 방어에 나서지 않는(이사회 중립 규칙) 대신 의무공개매수로 주주를 보호하는 영국 및 EU 국가들과 제도의 기반이 되는 철학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미국처럼 지배주주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거나 이사회가 회사를 약탈할 의도를 가지는 자의 인수 시도로부터 적극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소액주주 보호 제도를 전혀 두지 않는 것은 주요 국가 중엔 우리 뿐"이라는 얘기다.

정 교수는 유럽식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소액주주에 매각 기회를 부여하고, 지배주주가 누리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소액주주도 누릴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고 꼽았다. 또 이 제도가 "가치감소형 거래가 일어나는 것을 막고, 주주들의 매각 압박(다른 주주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소액주주가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공개매수까지 응하게 만드는 압박)을 해소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밝혔다. 물론 단점도 있다. 그는 "인수자가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거래가 성사되기 때문에 가치가 증가하는 거래도 일부 성사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식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당장 도입할 경우 소액주주 주식까지 지배주주 지분과 동일한 가격에 사야하는 데 따르는 비용 증가로 M&A 거래 감소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 절충안으로 소액주주에게는 프리미엄을 지급하지 않더라도 "현 시가에서 인수인에게 자기 주식을 매각하고 회사의 주주 자리에서 물러날 권리(매수청구권)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또 "소액주주 매수청구권을 도입하는 것은 가치증가형 거래를 과도하게 막지 않고, 회사 가치 증대에는 관심이 없는 인수인이 회사를 인수하는 가치감소형 거래는 모두 저지하며, 소액주주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대신 적절한 수준에서 보호하기 때문에 차익거래 가능성도 낮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도입하되 매수 신청된 주식 전체를 사지 않아도 되도록 완화한 일본식 공개매수 제도의 경우처럼 "일부 소액주주만 보호되는 문제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소액주주 보호기능이 전혀 없는 상태의 M&A와 비교하면 인수 대금이 다소 늘어나는 측면이 있지만 최근엔 우리나라에서도 인수금융(M&A용 자금 대출) 시장이 발전한 것을 고려하면 이로 인한 부담은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M&A 과정에서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 지배주주에게 불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결하고 장기적으로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회사의 자금조달비용이 낮아지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지배주주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정 교수는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