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막을 올릴 참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77석의 절대 과반이라는 큰 몸집으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103석으로 쪼그라든 모습으로 각각 바뀌었다. 여당은 의석 수를 무기로 '힘의 정치'를 밀어붙일 태세고 4·15 총선 이전부터 바람 잦을 날 없던 미래통합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지도 아래 당의 정체성에 변신을 꾀하는, 쉽지 않은 도전에 나섰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흔한 말을 인용할 것도 없이 여야 모두 국회 개원을 맞아 어쨌든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한 몸짓을 이제 본격 시작하고 있는 때다. 유감스러운 것은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 우리 한국의 정당들의 내부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전혀 과거와 달라지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아니 달라지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더 후퇴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요즘이다.
우선 거여(巨與)로 불리는 더불어민주당부터 보자. 의석 수를 앞세워 단독 국회 개원을 하겠다거나 국회상임위원장 전체를 독차지하겠다는 등의 뜻을 내비친 것은 야당과의 관계 설정 문제라는 점에서 일단 논외로 한다 치자. 문제는 정작 당내에서 자유로운 의견이나 의사 표시 자체가 봉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국회의원이 된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한창 보도되던 지난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미향과 관련된 당내 목소리를 차단하는 사실상 '함구령'을 내렸다. 윤씨가 당선자 시절이던 당시 당내 일부 인사들이 윤씨의 사퇴를 촉구하고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당대표가 당내 의견 표출을 중단시킨 것이다. 이 대표는 "정의연의 30여년의 활동이 정쟁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 "신상털기식 의혹 제기에 절대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에 징계를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 전 의원은 민주당내에서 드물게 '쓴소리'를 자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국 청문회 당시 '소신 발언'으로 당내에서 미운털이 박힌 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표결 시 기권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당 윤리심판원에서 '경고 처분'의 징계를 받았다. 금 전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당론이라고 결정하고 (이를 어기면) 징계를 받게 되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며 "정당이 소속 의원의 표결을 이유로 징계하는 것은 대단히 중대한 일"이라며 반발했다. 당 내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거세다. 김해영 최고위원은 "헌법상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돼 있다"며 "금 전 의원에 대한 징계는 개인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당 민주주의하에서 국회의원의 양심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대단히 중요한 헌법 문제"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금 전 의원 징계 문제의 파장이 커지자 "금 전 의원 징계는 논란으로 확산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막혀 생긴 문제를 또 다른 '입막음'을 통해 미봉하려고 한 것이다. 당 외부에서는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정당이 과연 민주 정당이며 자유주의 정당이냐"는 반문이 나온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 전 의원은 소위 '금수저'로 불린다. 아버지가 판사를 했고 비교적 여유로운 환경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그는 비교적 거침 없이 자기 표현을 하면서 살아왔다. 검사시절 일간지에 칼럼도 게재했고 그게 문제가 돼 칼럼을 중단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되지 않거나 최악이 경우 탈당을 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일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 인 금 전 의원이기에 그나마 할 말을 한 것이지 정당과 정치에 이른바 '목을 맨' 정치인들에게는 당론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언감생심인 게 현실이다. 이름에조차 '민주'가 들어간 정당이 정작 당내에서는 언로가 막히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것은 이른바 보수 정당으로 불리는 미래통합당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미래통합당 초선의원 공부 모임에서 "도대체 보수라는 말 자체가 무엇을 지향하는 것이냐"며 "나는 보수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이어 "세계 어느 나라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다. 내가 통합당에서 지향하는 것은 실질적인 자유를 이 당에 어떻게 구현해내느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른바 진보 정당 쪽에서 주로 제기해 온 '기본 소득' 문제까지 제기하고 나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당연히 당 내외에서는 그의 행보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당내에서는 "그가 보수와 자유 우파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말라고 했다"며 "보수 가치를 부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좌파 2중대 흉내내기를 개혁으로 포장해서는 좌파 정당의 위성 정당이 될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런 목소리에 대해 김 위원장은 "따지지 말라"는 투다. 그는 통합당 의원총회에 첫 참석해 의원들에게 "다소 불만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과거 가치와는 조금 떨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너무 시비 걸지 말고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말이 '당부'이지 '정치 9단'인 김 위원장의 발언은 일종의 경고의 성격도 있다.
그는 확장적 재정정책에 대해서도 "포퓰리즘이라고 따지지 말라"고 말했다. 또 현금 복지 도입 주장에 대해서도 "주냐 안 주냐를 따지지 말고 국민이 원하면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당은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해 이를 정책으로 만들고 그러기 위해 집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결사체다. 국민의 여러 목소리를 다 받아들일 수 없는 만큼 당내는 물론 당외 인사들과도 끊임 없는 토론과 논쟁을 거쳐야 한다. 따지고 또 따지고 하는 것이 민주정당의 기본이라는 얘기다. 당 지도부가 결정하면 당원들은 따르기만 하는 공산당과 같은 독재 정당과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정당들은 여 야 할 것 없이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고집불통의 정당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시점이거나 다른 정당과 생사결단을 낼 정도의 비상상황이라면 당이 일치된 모습을 보이고 당론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비록 코로나로 경제가 비상 상황인 것은 맞지만 현 상황이 당내 이견을 수용해서는 안 될 정도의 위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개헌을 제외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의석을 점유한 더불어민주당은 왜 이리 조바심을 내나. 좀 더 느긋하게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열린 마음으로 관용적인 정치를 해도 넉넉한 정치환경 아닌가.
통합당도 마찬가지다. 비록 총선 패배로 당이 위기상태이고 지도부 교체에 따른 혼란이 없지 않지만 이럴 때일수록 당 안팎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위대한 정치지도자라 하더라도 혼자서 모든 해법을 제시할 수는 없다.
경쟁적으로 당내 '입단속'에 나서고 있는 원내 1,2 정당들이 과연 민주 정당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