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800만원 깎으며 버텨…신차개발비 2000억 지원 절실"

입력 2020-06-04 16:52
수정 2020-06-04 17:06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을 다시 찾은 건 11년 만이었다. 2009년 경영난에 따른 대규모 구조조정에 반발한 쌍용차 노조원들은 77일간(5월21일~8월5일) 공장 문을 걸어 닫고 ‘옥쇄파업’을 벌였다.

2011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에 인수된 이후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티볼리를 앞세워 2016년 반짝 흑자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13분기 연속 적자를 내면서 또다시 생사의 기로에 섰다.

쌍용차는 정부가 긴급 조성한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중 2000억원을 빌리고 다음달 만기가 돌아오는 산업은행 차입금(900억원) 상환 기간을 연장해 급한 불을 끄려고 한다. 하지만 쌍용차 경영 위기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문인지를 놓고 이견도 적지 않다.


◆2009년 위기와 달라…신차 개발자금 절실

“쌍용차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마힌드라가 코로나 탓에 자금난을 겪으면서 2300억원의 신규 투자 계획을 철회하고 400억원만 지원하면서 회생 계획이 틀어졌거든요.”

지난 3일 평택공장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정일권 쌍용차 노조위원장(사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마힌드라의 지난 3월 인도 자동차 판매대수는 전년의 10분의 1토막 났고 4월엔 한 대도 팔지 못해 ‘제 코가 석자’인 처지”라며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 이전부터 경영난에 빠졌다’는 주장부터 반박했다.

마힌드라는 올해 초 2022년까지 신차 개발비와 운영자금 등으로 5000억원을 투자해 쌍용차를 흑자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쌍용차는 임금 삭감·복지 중단 등 자구노력(1240억원)과 서울 구로동서비스센터 등 부동산 매각(2065억원) 등을 통해 3300억원을 확보할 방침이다. 기간산업안정기금 2000억원 지원을 받으면 당초 목표로 했던 5000억원을 조달할 수 있다.

정 위원장은 “이번 유동성 위기만 넘기면 내년 1분기 SUV 전기차(프로젝트명 E100)와 하반기 중형 SUV(J100) 등 경쟁력 있는 신차를 출시해 ‘SUV 명가’로 재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쌍용차에 신규 자금을 투입할 의지가 있는 국내외 자동차 관련 기업들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시장에선 마힌드라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포드 등이 투자자로 거론된다.

최근 재무구조 악화는 신차 개발 부재로 팔 차가 없었던 2009년 위기 때와는 본질이 다르다고 했다. 그는 “이번 위기는 코로나로 해외에 차를 살 사람이 없어 발생한 것”이라며 “빚만 갚는 게 아니라 신차를 개발하기 때문에 자금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쌍용차는 2011년부터 신차개발 등 연구개발(R&D)에 1조5000억원을 투자했다.


◆“일자리부터 지켜야”

정 위원장은 2007년과 2008년 노조위원장과 지부장을 지냈다. 당시 쌍용차 노조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였다. 2009년 파업도 참여했다. 그는 “투쟁을 외쳤지만 2000여명이 넘는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며 “안정적인 노사 관계를 바탕으로 5000명의 동료들과 한솥밥을 먹는 사내 협력사 근로자 1500명 등 6500개의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쌍용차 노조는 작년 임금 삭감·복지 중단에 합의해 올해 깎이는 연봉만 1인당 1800만원에 달한다. 1분기 쌍용차 임직원들의 1인당 평균 임금(사업보고서 기준)은 1600만원이었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6400만원으로 작년보다 25.6% 감소했다.

그런데도 지난 4월 국내 완성차 업체 중 가장 먼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을 타결했다. 정 위원장은 “회사가 살아야 고용도 가능하다는 노조원들의 공감대 덕분에 ‘11년 연속 임단협 무분규 합의’ 기록을 세웠다”면서도 “동료들이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음식점 배달이나 공사판 ‘노가다(막노동)’를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무겁다”고 고개를 숙였다.

노조 사무실 책상 한켠에 놓인 그의 수첩엔 하루 일정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정 위원장은 “쌍용차를 파는 대리점협의회 대표들이 희망을 갖도록 출시를 앞둔 신차를 공개하는 자리에 가야한다”며 자리를 떴다.

1시간 반에 걸친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평택공장 주자창에 렉스턴과 티볼리 등 신차 수백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오른쪽에 핸들이 달린 영국 수출용차였다. 쌍용차의 지난달 수출대수는 679대로 전년보다 66.3%나 급감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