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K] 야쿠자 문신은 그만…일본 파고든 'K타투'

입력 2020-06-04 09:56
수정 2020-06-0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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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에 분홍색 꽃 한송이가 활짝 피어있다. 옆에 빨간색 보라색 꽃도 웃음을 짓고 있다. 왼쪽 팔에도 흰 꽃이 뭉게뭉게 구름처럼 모여든다. 향기라도 나는 듯 나비들이 꽃에게 달려든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모두 인스턴트 타투를 활용한 것이다. 인스턴트 타투는 흰색 보호필름을 벗기고 도안을 원하는 신체 부위에 댄 뒤 10초 정도 누르면 완성된다. 검정색과 같은 단색 말고도 노란색 빨간색 등 컬러도 있다는 게 특징이다. 발등이나 허벅지 등 접촉이 적은 부위는 1주일 정도 지속된다.

김남숙 인스턴트 타투 대표는 지난달 28일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해외 중 일본 매출이 가장 높고, 판매량도 점차 늘고 있다"며 "일본에서 운영 중인 인스타그램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국 계정과 팔로워 수가 비슷할 정도"라고 밝혔다.

P&G에서 10년간 근무한 김 대표는 질레트 SKII 등 브랜드를 총괄했다. 회사에서 e커머스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면서 10~20대 젊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마케팅도 진행했다. 그러던 중 이들 젊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욕망은 무엇인 지 고민하게 됐다.

그는 "밀레니얼과 Z세대들이 갖고 있는 욕망은 다른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었다"며 "이들 세대는 이미 디지털상으로 여러 개 페르소나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중 타투가 아직 디지털로 개척되지 않은 아날로그라고 판단했다. 타투 브랜드를 출시한 이유다.

김 대표는 "타투를 패션 뷰티 쪽으로 끌어내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소비자에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존의 타투는 영구적으로 몸에 남는 만큼, 비용이나 고통도 있고 사회적인 시선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개선할 여지가 많은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우, 타투 자체가 불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행법상 의사 면허를 소지한 전문의를 통해 타투 시술을 받으면 합법이지만 그 외는 모두 불법이다. 의사 자격이 있는 타투이스트는 전체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 쉽게 지우는 문신…MZ세대 인기

실제로 인스턴트 타투의 주 소비층은 20대로,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태어난 밀레니얼세대와 그 이후 태어난 Z세대)가 주축이 되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더 심해졌는데 자기를 표현하는 베이스가 디지털로 변화하고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2018년 한국에 처음 선보였을 당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텀블벅 클라우드 펀딩을 거쳐 한 달 뒤 론칭했는데 소비자들이 매우 폭발적인 반응이었다"며 "기존에 있던 타투스티커는 물을 사용해야 했지만, 인스턴트 타투의 경우 건식타투로 매트하게 진짜 타투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엔 일본과 대만에도 출시했다. 출시 이후 매달 매출은 2배 이상 증가세를 보였다. 인스턴트 타투 제품의 가격은 5900원에서 1만1900원 정도로 기존 일회용 타투 대비 단가가 높은 편이다.

야쿠자 문화가 있는 일본에서도 한국처럼 타투가 금기시되고 있다. 그는 "일본은 타투가 있으면 온천 수영장과 같은 공공장소에 아예 못 들어가고, 파스 같은 걸 붙여야 한다"며 "꽃과 같은 여성적이고 감성적인 디자인들이 인기가 많다"고 밝혔다.

일본에선 지난해 다양한 오프라인 체험 행사도 진행했다. 김 대표는 "위워크에서 체험 부스를 선보였는데, 실제 타투처럼 보이니까 목 안 쪽에 하고 옷으로 가리는 직장인도 있었다"며 "소프트뱅크 자회사 중 폰트회사와 한자로 된 타투를 선보이는 페스티벌도 함께 진행했고, 패션쇼도 콜라보해서 선보였다"고 말했다.


◆ 그림처럼 보이는 한글 타투 인기

김남숙 대표는 인스턴트 타투를 판매하면서 K뷰티를 비롯한 K컬쳐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한국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해 이들에게 통할 만한 제품을 만들었는데, 대만과 일본에서도 반응이 좋아서 신기했다"며 "대만에서도 한국에서 인기 있다고 하면 관심을 더 많이 갖는 편으로, 홍콩과 싱가포르 등의 20대도 우리나라 20대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화권 문화인 대만은 타투에 더 개방적인 편이다. 김 대표는 "대만은 상대적으로 타투를 한 인구도 많고, 법적인 제재도 없어 타투에 대해 더 개방적"이라며 "홍콩과 싱가포르도 타투가 보편화 돼, 재미를 위해 인스턴트 타투를 주문하는 소비자들이 많은 편"이라고 밝혔다.

한글 모양의 타투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한글과 같은 레터링 타투를 바라보는 시선은 2가지인데 뜻에 관심을 갖거나 그림처럼 인지한다는 점"이라며 "한글을 예쁘다고 인식해 조형적인 미로 특별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밝혔다. 지체장애우들이 그린 ABC와 같은 레터링 타투도 있다. 각 알파벳으로 나눠 원하는 글자를 만들어 새길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 인스턴트타투는 페이스북 마케팅 케이스로 선정됐다. 김 대표는 "한국 마케터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스타트업으로선 유일하게 선정됐다"며 "페이스북을 통해 소비자들이 경험하고 싶어하는 콘텐츠를 보여줬던 게 주목을 받은 이유같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들이 인스턴트타투를 통해 재밌는 경험을 공유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그는 "소비자들이 제품을 활용하면서 저희를 직접 태그하고, 여행 페스티벌 등 친구나 애인 등과 같이 하는 경험을 공유하면서 인스턴트타투를 통한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도록 집중했다"고 밝혔다.

인스턴트타투는 타투의 '예술적인 측면'도 앞세우고 있다. 포토그래퍼 등 아티스트가 직접 참여한 제품 비중은 30%에 달한다. 김 대표는 "실제 문신이 있는 스웨덴 사진작가가 몸에 저희 제품을 부착하고 사진을 찍는 작업도 진행했다"며 "사진 상으로 보기엔 어떤 게 진짜 타투고, 인스턴트 타투 제품인 지 가려내기 어렵다"고 밝혔다.



◆ 무용가 모델도 타투 가능…바캉스용에서 놀이로

타투가 뷰티·패션 아이템으로 기능하도록 컬래버레이션(이하 콜라보)도 진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가수 헤이즈도 우리 제품을 사용했고, 가수 아이비 등 많은 연예인들도 호응해줬다"고 밝혔다.

지난해 버드와이저와 '타투, 예술이 되다'라는 주제로 콜라보 전시를 열었다. 올해는 라네즈 글로벌과 콜라보를 진행한다. 그는 "미국 같은 경우는 이번에 출시한 신제품과 콜라보하며, 동남아와 우리나라의 경우 제품을 구매했을 때 인스턴트 타투 제품을 넣어주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업 특성상 타투를 하면 안 되는 직종들과도 콜라보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무용가 모델과 같은 직군이 타투를 할 수 없는 대표적인 직업인데, 지난해 가을 현대무용가 차진엽과 콜라보를 진행해 무용가들이 인스턴트 타투 제품을 몸에 붙인 뒤 무대에 올랐다"며 "잡지 W와는 타투를 한 모델을 대상으로 화보를 찍는 것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인스턴트 타투는 신제품 출시 시기를 앞당겨 타투가 '여름 바캉스' 아이템으로만 한정된다는 점을 극복하고 있다. 그는 "처음 제품을 론칭했을 때 7~8월에 출시했지만, 지난해 4월에 신제품을 내놓았고 이를 9월까지 이어갔다"며 "올해는 신제품 출시를 3월부터 진행해 10월까지 이어갈 예정이며, 계절을 타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재구매율을 높이고 있다. 연평균 재구매율은 15~20% 정도로, 시즌엔 3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코로나19엔 집콕 놀이로 대응하고 있다. 김 대표는 "코로나로 줌이나 페이스타임과 같은 영상통화를 많이 한다는 점에 착안, 인스턴트 타투를 붙이고 영상통화하는 콘텐츠를 만들었다"며 "집콕 타투, 셀프 타투라는 명칭을 붙여 소비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발가락에도 작은 타투를 붙이는 방식으로 놀이라는 측면을 앞세우고 있다. 코로나19에도 올해 매출은 작년보다 2~3배 늘었다.

◆ 타투 리무버 시장 규모 '확대'…"한국적 감성 앞세울 것"

이처럼 인스턴트 타투는 타투를 대중화 된 영역으로 끌어내고 있다. 기존 타투는 여성의 섹시함을 앞세우거나 위협감을 주는 편견으로 작용했지만, 인스턴트 타투는 이를 지양하고 있다. 김 대표는 "기존의 타투들은 여성의 가슴골 부분에 넣어 성상품화를 강조했지만, 저희는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타투가 기능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도 타투에 대한 부정적은 이미지가 있는 만큼, 인스턴트 타투에 대한 니즈는 많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 대표는 "종교적인 이유로 무슬림 나라에선 타투를 하지 못하고, 크리스찬들도 터부시하기도 한다"며 "종교적 사회적 이유가 아니라도 립스틱 사듯이 타투를 쉽게 경험할 수 없다는 건 어디에든 공존하는 얘기"라고 진단했다.

타투를 지우는 시장의 규모는 기존 시장보다 2배 가량 더 큰 편이다. 인스턴트 타투의 성장 가능성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김 대표는 "최근 부부의 세계에 나온 한소희 씨도 예전에 타투를 했었지만 다 지웠다고 했다"며 "미국에선 200불짜리 타투를 했으면 지우는 데만 2000불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스턴트 타투와 같은 일시적인(temporary) 타투는 최근 해외에서도 새로운 비즈니스로 부상하고 있다"며 "미국에선 잉크박스와 태틀리라는 회사가 대표적인데, 태틀리는 물을 이용해 새기는 타투를 앞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는 앞으로 소비자 니즈를 충족하는 데 중점을 둘 계획이다. 소비자가 직접 디자인 하는 DIY타투도 가격을 낮춘다. 김 대표는 "현재는 50장에 20만원 정도로 책정돼 있지만, 이달부터는 원하는 문구와 폰트를 쓰면 10장 정도에 3만원 정도에 받아볼 수 있도록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해외 시장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대표는 "올해 기준으로 해외 매출 비중이 절반까지 올라왔다"며 "해외에서 방탄소년단이 인기를 끄는 것처럼, 한국적인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을 겨냥해 민화나 동양화 등을 더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소비자들이 타투 하면 첫번째로 떠오르는 브랜드로, 한국 스타일을 앞세워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
사진 =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