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개방하는 EU…英은 되레 '자가격리 의무화'

입력 2020-06-04 07:38
수정 2020-09-02 00:02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일시 폐쇄했던 국경을 잇달아 다시 열고 있다. 코로나19로 심각한 타격을 받은 관광산업을 재개하기 위해서다. 반면 지난 1월31일 EU에서 탈퇴한 영국은 오는 8일부터 모든 입국자를 대상으로 14일간 자가격리를 의무화하는 등 EU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최대 피해국 가운데 하나인 이탈리아는 3일(현지시간) 국경을 개방해 유럽 관광객 입국을 허용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 3월 초 이후 3개월만이다. 입국 허용 대상은 EU 회원국 및 솅겐조약 가입국에서 넘어오는 관광객이다. 이들은 이탈리아 입국 직전에 다른 대륙을 방문한 이력이 없다면 14일간의 의무 격리도 면제된다. 자가격리 조치가 유지된다면 관광 유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독일과 벨기에 정부는 오는 15일부터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내려진 EU 회원국과 솅겐조약 가입국 및 영국에 대한 여행경보를 해제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솅겐조약은 EU 27개 회원국 중 22개국과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4개국 등 총 26개국이 가입했다. EU 회원국 중 아일랜드는 가입을 거부했고,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키프로스 루마니아 등은 조약에 서명은 했지만 가입은 보류된 상태다.

솅겐조약의 핵심은 사람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이다. 조약 가입국 간 국경을 통과할 때 여권 및 세관 검사를 하지 않는다. 비자도 필요 없다. 가입국 중 한 곳에만 발을 들이면 다른 나라를 이동할 때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항공편으로 이동할 때도 국내선처럼 간편하게 탈 수 있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유럽 각국이 내부국경 통제에 나서면서 솅겐조약의 효력은 사실상 일시 중단됐다.

오스트리아는 4일부터 이탈리아를 제외한 모든 인접국과의 육상 검문소에서 입국 시 검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크로아티아도 EU 회원국 가운데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 등 10개국에서 온 시민들에 국한해 별다른 증명서 없이 입국을 허용할 계획이다. 스페인은 다음달부터 모든 외국인 입국자를 대상으로 시행 중인 2주간의 자가격리 의무화 조치를 해제한다. 앞서 스페인 정부는 이 때부터 관광 재개를 위해 외국인 관광객 입국을 허용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반면 영국 정부는 오는 8일부터 모든 입국자를 대상으로 14일간 자가 격리를 의무화하기로 확정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날 하원에서 열린 대정부질문(PMQ)에서 “코로나19 지역감염 사례가 줄어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해외로부터의 유입을 막기 위해 엄격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에 따르면 오는 8일부터 선박과 항공편, 철도(유로스타) 등으로 입국하는 모든 사람에게 2주일 간의 자가격리가 의무화된다.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적용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1000파운드(약 153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외국인의 경우 추방명령을 받을 수 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은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3월초 유럽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될 때까지도 이탈리아 북부 지역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입국제한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노동당은 지난 3월23일 영국에서 봉쇄조치가 내려지기 이전에 14일간 자가격리를 했던 입국자는 30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여당인 보수당의 테리사 메이 전 총리도 “이번 조치로 영국이 다른 나라와 단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상당수 유럽 국가는 국경개방 과정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당초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각국을 오가는 관광객에 대해선 자가격리 의무를 면제하는 방안을 협의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프랑스로부터의 입국자도 자가격리를 의무화하도록 결정했다. 그러자 프랑스 정부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영국 입국자들에게 자가격리 의무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항공업계와 여행사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생존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14일 자가격리까지 의무화되면 관광산업이 파탄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존슨 총리는 “코로나19 감염률이 낮은 나라에서 오는 관광객에게 자가격리를 면제하는 이른바 ‘공중 가교’(air bridges) 방식 등에 대해 안전하다고 판단될 경우에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