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사드식 압박'에 굴복한 英 HSBC…"보안법 지지"

입력 2020-06-04 06:48
수정 2020-07-04 00:31
홍콩에 본사를 둔 영국 대형은행인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중국의 압박에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에 대한 공개 지지를 표명했다. 홍콩에서 활동 중인 영국계 기업인 캐세이퍼시픽과 자딘매디슨그룹도 잇달아 홍콩보안법에 대해 지지를 선언했다. 중국이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두고 한국 기업에 보복했던 것처럼 홍콩의 외국계 기업에도 ‘사드식 압박’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피터 웡 HSBC 아시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홍콩보안법을 지지하는 청원에 서명했다. HSBC는 중국 소셜미디어 플랫폼 위챗에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HSBC는 “우리는 홍콩이 경제를 회복하고 재건할 수 있도록 하는 법과 규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웡 CEO는 이날 중국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홍콩보안법이 홍콩에 장기적인 안정과 번영을 가져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1865년 홍콩에서 설립된 영국 대형은행인 HSBC는 1991년 런던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다만 지금도 전체 순익의 절반 가량을 홍콩과 중국 본토 등 아시아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HSBC는 스탠다드차타드(SC), 중국은행과 함께 홍콩금융관리국의 승인을 받아 홍콩달러를 발행할 수 있는 3대 은행 중 하나다.

HSBC는 2014년 우산시위와 지난해 홍콩 민주화시위 당시엔 홍콩의 정치상황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지난달 말 국제사회와 홍콩 시민들의 반발에도 홍콩보안법 처리를 강행한 후 친중 인사와 중국 관영 언론들로부터 홍콩보안법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중국 최고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의장인 렁춘잉(梁振英) 전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달 말 “HSBC가 홍콩보안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영국 정부는 미국 정부 편이다. HSBC가 영국 정부를 따르는지 주의깊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HSBC가 홍콩에서 독특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며 “HSBC의 중국 사업은 하루아침에 중국 등의 은행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HSBC에 이어 영국계 기업인 캐세이퍼시픽과 자딘매디슨그룹도 중국의 압박에 못 이겨 홍콩보안법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캐새이퍼시픽은 이달 초 현지언론을 통해 “홍콩보안법은 홍콩의 장기적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캐세이퍼시픽은 영국의 스와이어 가문이 대주주다. 2대 주주는 중국 국영 에어차이나다. 지난해 홍콩 민주화시위 당시 친중 매체들은 캐세이퍼시픽 소속 승무원들이 시위에 대거 가담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 일로 루퍼트 호그 최고경영자(CEO)가 사임했다.

자딘매디슨그룹은 이날 현지 친중매체에 홍콩보안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알리는 광고를 냈다.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시작된 자딘매디슨그룹은 홍콩에 본사를 둔 종합상사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