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공장 혁신 이끈 삼성-중기중앙회'콜라보'지원

입력 2020-06-04 17:57
수정 2020-06-05 08:12

국내 김치 생산업체가 중소기업중앙회, 삼성전자 등과 손잡고 스마트공장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생산성이 두 배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배추에 양념을 자동으로 혼합하는 설비를 사용해 김치 담그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것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중소벤처기업부와 중기중앙회는 김치 제조업체 다섯 곳을 선정해 이 장치 도입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했다.

삼성전자는 이 설비에 필요한 정보기술(IT)을 적용해 추가적인 스마트화가 가능하도록 도왔다. 김치공장의 스마트화로 국산 김치가 품질과 가격경쟁력 면에서 중국산에 비해 월등히 우위에 서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생산성이 향상된 만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국산 김치 수요에 대응할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다.

○100% 수작업 탈피…첫 자동화

4일 업계에 따르면 풍미식품, 농가식품, 고향식품, 고원식품, 이루심 등 5개 김치 제조업체는 중기중앙회, 삼성전자, 인천김치절임류가공사업협동조합 등과 손잡고 올초부터 ‘김치 소 넣기’라는 자동화 설비를 설치하고 스마트공장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설비는 세계김치연구소가 3년여의 연구 끝에 개발한 것으로 작년 협동조합에 기술 이전됐다.

배추가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원통형인 이 설비로 들어가면 사방 노즐에서 김치 소가 분사되면서 배춧잎 사이로 구석구석 스며든다. 마치 레미콘 설비처럼 계속 회전하기 때문에 양념이 배추 겉과 속에 골고루 버무려진다. 김치 생산 공정은 배추 투입, 절임, 세척, 탈수, 양념 혼합, 숙성, 포장 등의 과정으로 이뤄지는데 노동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양념 혼합’ 작업을 이 설비가 대신 해주는 셈이다. 열무김치, 배추김치, 포기김치, 맛김치 등에 모두 적용할 수 있다.

정영배 세계김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보통 양념 혼합 작업에 필요한 인력이 16명인데 이 설비를 도입해 3~4명 수준으로 줄게 됐다”며 “김치 상용화 30여 년 역사상 첫 부분 자동화가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업계 반응은 폭발적이다. 김치 공정에서 노동력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양념 혼합 공정의 투입 인력과 소요 시간이 절반 이상 줄면서 생산성이 두 배 넘게 좋아진 덕이다. 김치은 농가식품 사장은 “사람이 장시간 양념 혼합 노동을 하다 보면 간혹 스트레스를 받아 배추 조직을 상하게 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이 설비를 활용한 뒤 배추가 전혀 상하지 않아 맛이 더 좋아졌다”며 “이 설비 도입을 기다리는 업체가 40여 곳에 달한다”고 말했다.

○국산 김치 글로벌 경쟁력 강화

국내 3위 김치 제조업체인 한성식품은 자동화 설비 도입 없이 삼성전자의 코치만으로 생산성이 두 배 올라간 사례다.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중기부와 매년 100억원씩 5년간 1000억원을 조성해 중소기업 스마트공장 구축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지원한 중소기업만 2000여 곳이 넘는다.

삼성은 먼저 배추가 옮겨지는 컨베이어벨트 끝부분에 에어블로어(송풍기)를 달아 재료의 낙하와 이탈을 막고, 이물질이 자동으로 제거되도록 했다. 또 별도의 역회전 컨베이어벨트를 설치해 무 껍질과 흙 등의 쓰레기가 곧바로 폐기장으로 배출되도록 했다. 주재료인 무와 쓰레기인 껍질 등의 동선을 분리해 이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포장과 물류 공정도 대폭 단순화해 포장 공정에 있던 17명의 인원 중 15명이 생산라인에 투입되도록 했다. 한성식품 김치의 품질은 70% 상승되고 하루 생산량은 기존 80t에서 170t으로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식품업계 중 유일하게 100% 수작업으로 운영되던 김치 제조공장이 스마트화되자 생산성이 높아지고 생산량 예측이 가능해져 내수 공급과 수출에 유리해졌다는 분석이다. 또 일본뿐만 아니라 프랑스,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급증하는 해외 수요에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면역력에 좋은 발효식품인 김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지난 4월 김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급증했다. 스마트공장 도입에 따른 비용 절감으로 제조 원가가 내려가 그동안 국내 식당을 점령했던 중국산 김치와 가격 경쟁도 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김치업계 관계자는 “김치공장은 노동 강도가 높고, 근로자의 컨디션에 따라 공정 속도가 달라져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공장 스마트화로 생산량 예측이 가능해지면서 해외 수출 문의가 늘었고, 작업 환경이 개선돼 채용 희망 연령층도 젊어졌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