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경상수지가 9년3개월 만에 최대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출이 급감한 여파다.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4월 국제수지’(잠정)를 보면 4월 경상수지는 31억2430만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작년 4월(3억9320만달러 적자) 후 1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폭은 유럽 재정위기 때인 2011년 1월(31억5960만달러) 후 가장 컸다.
부진한 수출이 경상수지를 적자로 돌렸다. 4월 수출은 363억9360만달러로 작년 4월(484억1830만달러)에 비해 24.8% 감소했다. 2010년 2월(313억6450만달러) 후 최소다. 수입은 355억7000만달러로 16.9% 줄었다. 수입보다 수출 감소폭이 커지면서 상품수지(수출-수입)는 작년 4월에 비해 85.3% 감소한 8억2360만달러를 기록했다. 2012년 4월(3억2830만달러 적자) 후 최소치다.
배당소득수지가 30억890만달러 적자를 기록한 것도 경상수지를 갉아먹는 역할을 했다. 통상 4월은 12월 결산법인이 외국인 투자자에 배당금을 송금하는 시점으로 다른 달에 비해 배당소득수지가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문소상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코로나19가 세계로 확산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 수출이 감소했고 반도체 승용차 등 주요 수출품 가격도 하락했다”고 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재정적자 쌓이는데 경상수지마저 불안
'한국 경제 보루' 흔들
경상수지가 지난 4월 대규모 적자를 냈지만 5월부터 연말까지 흑자를 지속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앞으로 수출에 영향을 미칠 변수가 적지 않은 만큼 경상수지 흑자폭이 예년 수준을 크게 밑도는 등 ‘불안한 흑자’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4일 페이스북에 “경상수지 적자는 코로나19에 따른 수출 부진 영향”이라며 “5월부터는 적자가 발생할 위험이 거의 없다”고 썼다.
4월 9억5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한 무역수지가 5월에 4억4000만달러 흑자로 돌아선 것도 김 차관의 경상수지 흑자전환 전망을 뒷받침한다. 상품수지는 무역수지에 반영되지 않는 중계·가공무역 등 해외생산이 포함돼 집계되는 만큼 통상 무역수지보다 크게 잡힌다. 5월 상품수지 흑자가 예상되는 데다 배당소득수지 적자와 같은 일회성 요인도 사라지는 만큼 경상수지가 흑자전환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은행도 이 같은 점을 반영해 올해 경상수지 흑자를 작년(599억7120만달러)에 비해 5% 감소한 570억달러로 전망했다.
하지만 흑자폭이 한은 전망치를 크게 밑돌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국제무역기구(WTO)도 ‘낙관적 시나리오’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올해 수출이 전년에 비해 13.5% 감소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비관적 전망으로는 감소폭이 36.2%에 달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앞으로 경상수지 흑자폭이 줄고 불황형 흑자 양상도 나타날 것”이라며 “미·중 갈등이 향후 수출의 핵심 리스크”라고 말했다.
경상수지 흑자는 탄탄한 재정건전성과 함께 한국 경제를 지지하는 양대 버팀목 역할을 했다. 한국의 신용등급(무디스 Aa2, 피치 AA-, S&P AA)이 선진국 수준을 유지한 것도 이 두 지표가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덕분이었다. 경상수지 흑자폭이 줄어드는 조짐과 맞물려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나빠지면서 신용등급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