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홍콩發 ELS 위기' 재연 우려에…금융당국 "외화자산 넉넉해 괜찮다"

입력 2020-06-04 17:26
수정 2020-06-05 01:49
홍콩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확대 조짐을 보이자 국내 증권업계에서 “홍콩발(發) 2차 증권사 유동성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증권사들이 주가연계증권(ELS) 기초지수로 홍콩H지수를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현재 증권사들의 외화유동성은 충분한 수준”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홍콩H지수를 기초지수로 발행된 ELS 중 아직 상환되지 않고 남아있는 미상환잔액은 28조8557억원으로 집계됐다.

홍콩H지수는 홍콩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H주) 중 40개 우량 종목의 평균 주가수준을 나타내는 지수다. 유로스톡스50, S&P500 등과 함께 국내 증권사들이 발행하는 지수형 ELS의 기초자산으로 많이 활용된다. 지난달 ELS 미상환잔액 중 기초자산으로 H지수를 담은 상품(지수 중복 가능) 비중은 55.6%로 유로스톡스50(87.1%), S&P500(79.1%) 다음으로 높았다.

홍콩H지수 움직임이 국내 투자자의 이목을 끈 건 지난달 28일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하면서부터다. 미국은 중국의 행위가 홍콩의 자치권을 침해한다며 홍콩에 부여해왔던 관세나 투자, 무역 관련 특별지위를 철회하겠다고 맞받아쳤다. 증시 전문가들은 홍콩의 금융허브 위상이 흔들릴 경우 홍콩증시에서 대규모 자금이 유출돼 H지수가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홍콩H지수 연계 ELS를 운용하는 증권사들도 홍콩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지난 3월 유로스톡스50지수 급락으로 ELS 자체헤지 자산에서 수조원대 마진콜(증거금 추가납입 통지)이 한꺼번에 쏟아져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일부 대형증권사에서 증거금 납입에 필요한 달러화를 시장에서 구하지 못하는 등 일시적 유동성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신용평가업계에서도 홍콩H지수 움직임에 따른 증권사 유동성 위기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3일 “미·중 분쟁 확대가 홍콩H지수 등 ELS 기초자산의 변동성 확대를 야기할 경우 국내 증권사의 유동성 및 수익성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홍콩H지수 관련 ELS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높은 증권사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나이스신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홍콩H지수 연계 ELS 미상환액은 한국투자증권이 3조90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미래에셋대우(3조6000억원), KB증권(3조5000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자기자본 대비 홍콩H지수 ELS 미상환액은 한투증권(79.5%), 신한금융투자(78.0%), KB증권(76.6%) 순으로 컸다.

금융당국은 증권사들이 자체 위기관리 능력을 높인 만큼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방침이다. 미·중 갈등 확산에도 홍콩H지수는 아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5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홍콩H지수는 4.2% 상승했다.

금융감독원은 ‘ELS 마진콜 사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증권업계가 이번엔 달러예금 등 외화자산을 많이 쌓아놓고 있다는 점도 위기설을 불식시키는 근거로 꼽았다. 3월 말 기준 국내 57개 증권사의 외화예금액은 5조1333억원으로 작년 말(2조7734억원) 대비 약 85% 급증했다. 삼성증권 등 일부 대형사는 외화예금을 1조원 이상으로 늘렸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