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1587~1671)가 전남 완도군 보길도에 조성한 ‘부용동 원림’ 입구의 세연지(洗然池)는 두 개의 연못으로 이뤄져 있다. 상류에서 흘러내린 개울물에 보를 막아 계담(溪潭)을 만들고, 이곳의 물은 물구멍을 통해 인공연못 회수담(回水潭)으로 흘러들게 했다. 계담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으로 동적인 경관을 살렸고, 회수담은 유속을 최대한 떨어뜨려 정적인 공간으로 연출했다.
유속을 떨어뜨린 원리는 오입삼출(五入三出). 계담에서 들어가는 물구멍은 다섯 개인데 회수담으로 나오는 물구멍은 셋이다. 그럼으로써 물소리는 잦아들고 수면은 잠잠해진다. 고산의 탁월한 공간 감각과 과학적 사고, 예술적 안목이 빚어낸 부용동 원림이 조선 3대 민간정원으로 손꼽히는 이유다.
인문여행가 김종길 씨가 쓴 《한국 정원 기행》은 인문학적 시각으로 쓴 정원 기행서다. 조선 3대 민간정원인 부용동 원림과 담양 소쇄원, 영양 서석지를 비롯해 별서정원인 안동 만휴정·예천 초간정·담양 명옥헌·대전 남간정사·서울 석파정과 성낙원·강진 백운동 별서와 다산초당·화순 임대정 원림, 주택정원인 경주 독락당과 아산 건재 고택, 별당 정원인 함안 무기연당·달성 하엽정·봉화 청암정·강릉 활래정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누가 어떻게, 어떤 생각을 반영해 정원을 만들었는지는 물론 동선을 따라 정원을 관람하며 그 특징과 공간을 이해할 수 있게 한 점이 돋보인다. 부용동 정원을 제대로 즐기려면 아침 일찍 낙서재에서 소요하다 낮에는 세연정을 감상하고 해 질 무렵에 동천석실을 찾는 것이 좋다. 소쇄원에서는 몸의 모든 감각을 열어젖히고 천천히 음미할 것. 90여 개의 상서로운 바위가 연못 안에 있는 서석지(瑞石池)에서는 오로지 바위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겨울이 관람하기 좋은 때라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음완보(微吟緩步), 나직이 시를 읊조리며 느릿하게 걷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