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쇼트' 실존 주인공의 '역발상 바이코리아' 대박

입력 2020-06-03 17:40
수정 2020-06-04 02:46
‘빅쇼트’는 2008년 미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를 예측해 엄청난 부를 거머쥔 투자자를 다룬 영화다. 최근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이 영화가 다시 한번 투자자들의 입에 올랐다. 2차 증시 폭락 우려 때문이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높은 수익을 올려 화제가 됐다.


3월 폭락장에 중소형주 ‘줍줍’

주인공은 마이클 버리 대표. 그는 2013년 사이언에셋매니지먼트라는 헤지펀드 운용사를 설립해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등록된 운용 인력은 버리 대표 한 명뿐이다. 한국과 미국 금융당국에 공시한 내용을 보면 사이언에셋매니지먼트는 작년 말 기준으로 총 3억7290만달러(약 4537억원)를 운용 중이다. 국내 증시에서는 4개 종목(조선선재 이지웰 비츠로셀 오텍)의 지분율이 5%를 넘는다.


버리 대표는 지난 3월 폭락장에서 공격적으로 한국 주식을 사들였다. 보유한 공시대상 한국 주식의 평가 금액은 600억원대로 크지 않다. 하지만 이 종목들이 4월 이후 반등장에서 급등하며 89%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선재는 3일 29.70% 급등한 13만1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일에 이어 이틀 연속 상한가를 쳤다. 1일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 등 조선 3사가 23조원 규모의 LNG선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용접봉 제조사인 조선선재로 투자가 몰렸다. 사이언에셋은 지난 3월 급락장에서 조선선재 2313주를 추가 매수하는 등 총 6만4617주(지분율 5.14%)를 보유하고 있다. 주가가 급등한 덕에 평가 금액은 85억원으로 늘었다.

복지몰 위탁운영업체인 이지웰도 버리 대표의 투자 성공 사례에 포함됐다. 사이언에셋은 작년 7월부터 이지웰 지분을 매집하고 있다. 지난 3월에 주가가 저점을 찍자 매수를 늘렸다. 약 1년 동안 그가 매수한 지분의 평균 매입단가는 주당 7483원. 현재 수익률은 89.76%다.

리튬전지 제조업체 비츠로셀은 3일 상장 이후 최고가를 경신했다. 비츠로셀은 버리 대표가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매수하기 시작한 종목이다. 사이언에셋은 3월 5% 지분 공시를 낸 이후에도 계속 주식을 사 비츠로셀 지분 5.32%를 확보했다. 공시 이후 매입단가 대비 수익률은 38.02%, 총 평가금액은 218억원이다.

그 밖에도 사이언에셋은 코스닥시장 상장 차량부품업체인 오텍 지분 9.75%를 보유해 2대주주에 올라섰다. 오텍에 대해서는 경영참여 의사도 밝혔다.

한국 중소형 가치주 주목

버리 대표가 국내에서 투자한 종목의 공통점은 모두 시가총액 2000억원 이하의 중소형주라는 것이다. 조선선재를 제외하고는 모두 코스닥 상장사다. 이런 투자 패턴은 인덱스펀드에 대한 강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그는 지난해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덱스펀드로 자금이 밀려들면서 주요 지수를 구성하는 대형주의 주가가 급등하는 ‘버블’이 형성되고 있다”며 “중소형 가치주는 비교적 인덱스펀드의 수급에서 자유로워 이런 위험이 낮다”고 설명했다. 버리 대표는 “펀더멘털이 아니라 수급이 자산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인덱스펀드 버블은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온 부동산 버블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 중소형주 가운데서도 한국의 중소형주는 특히 저평가돼 있다고 보고 있다. 버리 대표는 작년 9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오텍과 이지웰에 투자한 사실을 알리며 한국 중소형주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당시 그는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과학기술과 높은 교육 수준을 칭찬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췄음에도 늘 주식이 저평가돼 있다”며 “이는 최대주주와 소액주주들을 차별하는 경영진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버리 대표는 CJ그룹 지주사인 CJ에 대해선 “투자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