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럽고 불편하고 혼란스럽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중심인 백악관까지 마틴 루서 킹 서거(1968) 이후 52년 만에 연기에 휩싸인 모습이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온다.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은 것도 황당하지만, 경찰 과잉단속으로 인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이 집단시위, 약탈·방화, 블랙호크 헬기 투입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더 믿기 힘들다. 요즘 미국 언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가 ‘curfew(통행금지)’다.
역사는 과연 발전하고 있는가. 짙은 회의를 품게 한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홈스봄이 살아 있다면 이 시기를 ‘분노의 시대’라고 명명했을 듯싶다. 19세기 ‘혁명의 시대’, 20세기 ‘극단의 시대’를 거쳐 1990년대 이후는 인종·종교·민족의 근본주의가 빚어내는 ‘화염과 분노’가 지배하고 있다. 이라크와 유고 사태는 그 서막이었고, 2001년 9·11 테러로 본막이 올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 아랍의 봄, 2020년 코로나 사태까지 4막째 이어지고 있다. 이념 갈등보다 더 뿌리 깊은 혐오와 대립의 뇌관이 수두룩하다.
‘분노의 시대’에 관해 설득력 있는 분석을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의 《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es)》에서 들을 수 있다. 인간에게는 집단에 속하고픈 ‘부족 본능’이 있는데, 이는 ‘소속 본능’인 동시에 ‘배제 본능’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 정체성은 ‘국가’가 아니라 인종·지역·종교·분파에 기반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베네수엘라 등에서 번번이 실패한 것도 더 원초적인 부족 본능을 간과한 탓이라는 진단이다.
미국도 다를 게 없다. “인종이 미국의 빈민을 갈랐고, 계급은 미국의 백인을 갈랐다”는 한마디로 추아 교수는 압축했다. 공권력에 의한 흑인 사망이 부른 시위 사태의 이면에는 가계 순자산이 10배 차이나는 흑백 간 빈부 격차가 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기득권 엘리트층에 대한 중서부 백인 노동자 계급의 강한 반감이 투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세계는 근대 이래 번영을 가져온 계몽주의적 원칙들(자유주의, 세속주의, 합리성, 평등, 자유시장 등)을 부족 본능이 대체하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가 부추긴 집단의 위기감이 부족 본능을 강화시켜 더 폐쇄적이고 대립적인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우리(us) 대 그들(them)’로 구분짓는 게 분노의 시대 뉴노멀인 셈이다.
한국은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자유로울까. 인종, 종교, 민족의 갈등은 없지만 이념뿐 아니라 계층, 지역, 연령, 직역 등 또 다른 형태의 집단 부족주의가 고개를 든다. ‘우리가 남이가’식 사고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번지고 있다. 조국 사태에 이어 윤미향 사태에서 드러난 집단편향이 정치적 부족주의와 다른 차원이라고 볼 수 있을까. 파란색과 빨간색이 확연히 갈리는 선거 지형도, 청년의 기회를 박탈하는 기득권 성벽, 직역 이기주의 같은 것들도 부족주의나 다름없다.
부족사회는 신성시하는 토템(totem)과 금기로 여기는 터부(taboo)가 있었다. 한국의 거대 집권여당은 당론과 다른 소신 표결을 징계하고, 윤미향 사태에 대해서는 함구령을 내렸다. 당론은 일체의 비판이 허락되지 않는 무(無)오류이고, 같은 편이면 무슨 짓을 해도 잘못을 따지지 말라고 금지하는 식이면 이는 정당이 아니라 토템과 터부를 가진 ‘정치적 부족’에 가깝지 않을까.
옳고 그름의 잣대가 형해화된 한국 사회는 지금 ‘자유보다 평등’이 시대정신이라고 한다. 보수정당조차 기본소득을 언급하는 판이다. “자유는 공기처럼 흔해져 희소성이 떨어진 반면 평등은 희소하기에 더 갈구한다”는 한 경제학자의 해석이 흥미롭다. “신(神)이 원하신다”는 한마디로 200년 십자군전쟁이 일어났듯이, “국민이 원한다”는 한마디로 무한 포퓰리즘이 어디까지 치달을지 알 수 없다.
아무도 나라의 미래를 말하지 않은 지 오래다. 이렇게 10년, 20년 뒤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추아 교수가 인용한 니체의 말이 신랄하다. “개인이 제정신이 아닌 것은 드문 일이지만, 집단은 제정신이 아닌 게 정상이다.” 우리는 ‘보편, 상식, 합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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