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많은 전문가의 예상을 깨고 ‘V’자 반등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덕분에 주가 폭락 때 우량주를 공격적으로 사들인 개인투자자들은 ‘스마트 개미’라는 별칭을 얻었다. 주식시장과 반대로 움직이는 인버스(inverse) 상장지수펀드(ETF)와 원자재 등 다양한 고위험 상품으로 갈아타며 종횡무진하는 모습도 인상적인 변화다.
뚜렷한 자기 주관을 갖고 판단을 내리는 개인투자자의 증가는 과거에 생각하지 못했던 ‘충돌’도 낳고 있다. 일부 투자자가 최근 삼성자산운용을 상대로 제기한 ETF 관련 소송이 대표적이다. 삼성자산운용은 지난 4월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물 가격이 마이너스로 폭락하자 ‘투자자 보호’를 목적으로 서둘러 상품가격의 변동성을 축소(6월물을 원월물로 교체)했다. 이 결정을 놓고 개인투자자 200여 명은 유가 반등에 따른 고수익 기회를 놓쳤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위험을 알고 투자했는데 왜 임의로 ‘과잉보호’ 결정을 내렸냐는 게 불만의 요지다.
이번 갈등은 최근 금융회사들이 처한 ‘딜레마’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저금리에 대응해 경쟁적으로 고위험 대체투자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설계하고 운용해 대규모 손실을 막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대형사고는 막고 보자’는 금융회사들의 보수적 판단은 작년부터 벌어진 각종 금융사고로 갈수록 강화되는 모습이다. 독일 금리 관련 파생결합상품(DLF),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판매 회사는 부실화 책임을 지고 많게는 손실의 절반 이상을 돌려줘야 할 처지에 몰렸다. KB증권은 호주부동산펀드 개인투자자들에게 원금 900억원을 전액 돌려줬다. 올해 들어서는 신한금융투자와 하나은행이 일부 해외자산 연계 상품 사고 금액의 절반 정도를 가지급하기로 했다.
고수익 상품에 수억원을 투자한 자산가가 과연 해당 상품의 위험을 몰랐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법적 책임을 뛰어넘는 ‘투자자 달래기식’ 보상 결정은 많은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란 우려를 낳는다. ‘손실은 투자자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자기책임 투자 원칙의 퇴보를 초래할 수 있어서다. 위험 대비 과도한 보상은 또 다른 고위험 상품의 ‘묻지마 투자’를 자극하기 마련이다. 금융회사들이 손실 규모를 제한하는 일종의 ‘풋옵션’을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셈이다.
불이익은 궁극적으로 개인투자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높아진 보상 리스크는 수수료 상승과 다양한 금융상품의 취급 기피로 이어질 게 뻔하다. 기대보다 낮은 투자수익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더 많이 발생할 수도 있다. 삼성자산운용의 이번 판단에도 고객의 수익 제고보다 과도한 위험의 회피 유인이 더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
스마트 개미들이 강해진 자기 주관만큼 투자에 책임을 느끼려면 금융당국의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금융상품 부실을 둘러싼 잡음을 없애려 보상을 압박하거나 임직원 징계 수위를 높이는 일 처리가 능사가 아니다. 1999년 개인투자자들의 대우채 손실을 모두 금융회사에 떠넘긴 판단은 2013년 2조원에 가까운 동양그룹 회사채 투자 손실 사태의 씨앗이었다. 지금의 과잉보호 결정이 미래 금융소비자에게 미칠 손실을 잘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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