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서 2달 만에 80%대 차익 본 '빅쇼트' 주인공

입력 2020-06-03 16:13
수정 2020-06-03 16:22
‘빅쇼트’. 2008년 미국 부동산시장의 붕괴를 예측해 금융위기 와중에도 엄청난 부를 거머쥔 투자자들을 다룬 영화다. 지난 2일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이 영화가 다시 한번 투자자들의 입에 올랐다. 2차 증시 폭락 우려가 아니다. 이 영화 속 실존 인물이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높은 수익을 올렸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연의 주인공은 마이클 버리 대표. 그는 2013년 ‘사이언 에셋 매니지먼트’라는 헤지펀드를 설립해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등록된 운용역은 본인 뿐이다. 한국과 미국 금융당국에 공시한 사항에 따르면 사이언에셋매니지먼트는 작년말 기준으로 총 3억7290만달러(약4537억원)를 운용중인데, 국내 증시에서는 총 4개 종목(조선선재 이지웰 비츠로셀 오텍)의 지분율이 5%를 넘겼다.

버리는 지난 3월 폭락장에서 공격적으로 한국 주식 지분을 확대했다. 보유한 공시대상 한국주식의 평가금액은 600억원대로 작지만, 이 종목들이 4월 이후 반등장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최대 89%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3월 폭락장에 중소형주 ‘줍줍’…최대 89% 수익

조선선재는 3일 29.70% 급등한 13만1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일에 이어 이틀 연속 상한가를 쳤다. 지난 1일 현대중공업 등 대형 조선3사가 23조원 규모 LNG선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알리자 용접봉 제조사인 조선선재가 수혜를 입었다. 사이언에셋은 지난 3월 급락장에서 조선선재 지분 2313주를 매수하는 등 총 6만4617주(지분 5.14%)를 보유하고 있다. 주가가 급등한 덕에 평가금액은 85억원, 3월 매수분의 수익률은 86.21%에 달한다.

복지몰 위탁운영업체인 이지웰도 버리의 투자성공 사례에 포함됐다. 사이언에셋은 작년 7월부터 이지웰 지분을 매집하고 있다. 지난 3월에 주가가 저점을 찍자 오히려 매수물량을 확대했다. 약 1년동안 그가 매수한 지분의 평균매입단가는 주당 7483원. 현재 주가 대비 수익률은 89.76%다.

리튬전지 제조업체 비츠로셀은 3일 상장 이후 최고가를 경신했다. 비츠로셀은 버리가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매수하기 시작한 종목이다. 사이언에셋은 3월 11일 5% 지분 공시를 낸 이후에도 매수를 이어가 비츠로셀 지분 5.32%를 확보했다. 공시 이후 매입단가 대비 수익률은 38.02%, 총 평가금액은 218억원에 이른다.

그밖에도 사이언에셋은 코스닥 상장 차량부품업체 오텍 지분 9.75%를 보유해 2대주주에 올라섰다. 오텍에서는 경영참여, 조선선재에서는 일반투자 목적을 공시하며 행동주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인덱스펀드 '버블' 경고...한국 중소형 가치주 주목

버리가 국내에서 투자한 종목들의 공통점은 모두 시가총액 2000억원 이하의 중소형주라는 것이다. 조선선재를 제외하고는 모두 코스닥 상장사다. 이는 그가 가진 인덱스펀드에 대한 강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그는 지난해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덱스펀드로 자금이 밀려들면서 주요 지수를 구성하는 대형주의 주가가 급등하는 ‘버블’이 형성되고 있다”며 “중소형 가치주는 비교적 인덱스펀드의 수급에서 자유로워 이런 위험이 낮다”고 설명했다. 버리는 "펀더멘털이 아닌 수급이 자산의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인덱스펀드 버블은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온 부동산 버블과 유사하다"고 덧붙였다.

전세계 중소형주 가운데서도 한국의 중소형주는 특히 저평가 매력이 크다는 평가다. 버리는 작년 9월 블룸버그와 인터뷰를 통해 오텍과 이지웰에 투자한 사실을 알리면서 한국 중소형주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당시 그는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과학기술과 높은 교육수준을 칭찬하면서 “한국의 기업들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췄음에도 늘 주식이 저평가되어있다”며 “이는 최대주주와 소액주주들을 차별하는 경영진 때문”이라고 말했다. 버리는 CJ그룹 지주사인 CJ에 대해 “투자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목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