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3일 "'한국판 뉴딜'이 기업의 설비투자를 위축시키는 등 구축효과(정부 재정지출 확대가 민간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소비·투자를 위축시키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학회장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무원이 설계하고 재정을 쏟아부어 등장하는 한국판 뉴딜은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으로 기업은 소외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은 2025년까지 76조3000억원의 재정을 쏟아 부어 디지털 인프라 등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그는 "한국판 뉴딜을 뜯어 보면 공무원이 운영하고 주도할 성격의 사업이 아니다"며 "정부가 기업이 투자할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에 그쳐야 하고 시장 주도권을 기업에 믿고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의 '리쇼어링'(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을 독려하기 위해 세금을 깎아주고 지원금을 지급하는 대책에 대해서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차가운 계산을 하는 기업이 규모가 크지 않은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노리고 복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규제개혁과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기업의 'U턴'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35조3000억원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에 대한 우려감도 드러냈다. 이 학회장은 "정부와 여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총선 승리로 확장재정의 당위성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조(兆) 단위 재정을 너무 쉽게 함부로 쓴다"고 말했다. 그는 "재정 씀씀이를 천문학적으로 늘리고 뒷감당을 어떻게할 것인지 우려가 적잖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경제학회·한국국제경제학회·한국재정학회가 '코로나 이후 한국경제 이슈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공동 경제정책 학술대회에서도 정부의 3차 추경과 확장재정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위기 극복 국면에서 총지출 규모가 늘면서 2028년 국가채무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67~80%까지 오를 것"이라며 "코로나 위기 직후 GDP 대비 재정적자비율이 5%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재정적자비율을 3%로 낮추기 위해 증세나 세출 삭감으로 연간 60조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이라는 조세정책 원리를 바탕으로 증세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성훈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고소득계층에 세금을 더 많이 걷을수록 사회적 후생은 감소할 것"이라며 "2017년 기준 41%에 육박하는 소득세 면세자 비율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재정준칙(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부채나 재정수지 등의 한도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채무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추도록 요구하는 형태의 재정준칙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국가채무비율 증가속도를 반영한 재정준칙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코로나19 직후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언도 나왔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안재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이 1990년부터 최근까지 5년 마다 장기성장률이 1%포인트씩 규칙적으로 하락했다"며 "1990~2019년 동안 장기성장률을 갉아먹은 것은 노동생산성이 떨어진 데다 산업구조가 변화됐고 고용률이 감소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해 서비스업 생산성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미·중 갈등이 깊어지고 글로벌 공급망이 훼손되는 데 대한 대응안도 논의됐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공급사슬이 친미 블록과 친중 블록으로 나눠지면서 산업의 비효율·혼란이 커졌다"며 "정부는 공급망을 구성하는 가운데 중소기업이 참여하는 것을 돕는 동시에 일부 전략 산업에 대한 지원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다자주의 체제 설립에 적극 동참하는 등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