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안전기준 강화되는데 외면받는 방염필름

입력 2020-06-01 18:05
수정 2020-06-02 01:17
“화재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방염 인테리어필름을 써야 할 공간은 늘어나는데 정작 방염제품 매출은 7~8년 전 전체의 80%에서 지금은 20%로 확 줄었습니다.”

서울 강남구에서 인테리어필름 대리점을 운영하는 A 대표의 얘기다.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처럼 최근 몇 년간 대형 화재사건이 발생하면서 건축물 화재안전 기준은 강화되고 있지만 인테리어필름 시장은 이 같은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테리어필름은 스티커처럼 붙이는 방식으로 다양한 패턴과 색상을 벽이나 장식장, 문 등에 쉽게 구현할 수 있는 제품이다. 화재 발생 시 불이 번지기 쉬운 건자재로 방염 처리된 인테리어필름을 사용해야 하는 공간은 규정돼 있다. 어린이나 노인이 이용하는 시설과 병원을 비롯해 대규모 인원이 이용하는 종교시설 및 호텔, 11층 이상 고층 오피스텔 등이다. 올 들어선 스크린 야구장·양궁장, 키즈카페, 방탈출 카페 등도 방염 필름을 사용해야 하는 다중이용업소로 추가됐다.

인테리어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인테리어필름 시장은 전년보다 10% 이상 성장한 1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지난해 비방염 제품 판매는 20% 이상 증가했지만 방염 제품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방염제품이 현장에서 외면받는 이유는 불법 시공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 대표는 “방염 제품을 반드시 써야 하는 현장에서도 방염 제품은 절반 이하만 사용하고 나머지를 비방염 제품으로 하는 곳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건축주가 공사비를 줄이길 원하니 시공업체는 불법을 무릅쓰고 더 싼 비방염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방염 필름은 비방염 대비 1.5~2배 정도 비싸다.

간소화된 방염 성능검사도 이 같은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 2013년 법제처는 소방분야 불편 법령을 정리하며 방염처리 실내장식물에 대해 중복 방염성능검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제조사가 사전에 방염성능검사에서 합격을 받은 제품을 사용할 경우 감독당국이 현장에서 검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법 개정 이후 시공업체는 관할 소방서에 사용 제품의 방염필증 서류만 제출하면 된다.

규제 완화 이후 방염필증 제출을 위해 방염 필름은 일부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비방염 필름을 섞어서 시공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