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생명도 중요" 불타는 경찰차·약탈당하는 명품샵…혼돈에 빠진 미국

입력 2020-06-01 11:06
수정 2020-06-01 11:11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을 짓눌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미국 전역이 혼돈에 빠졌다. 시위가 약탈과 무력 충돌으로 이어지자 미국 정부는 군 병력을 긴급 투입을 경고하며 진압에 나섰지만 이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못하는 모양새다.

31일(현지 시간) CNN방송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25일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에 흑인 남성이 숨진 사건으로 시작된 항의 시위가 미국 75개 도시로 번지고 있다. 곳곳에서 약탈과 방화를 동반한 폭동이 일어났고, 총격 사건까지 나타나며 현재까지 최소 4명이 숨졌다. 체포된 시위대는 16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는 사건 진원지인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했다. 당초 정의를 외치며 거리 행진으로 평화롭게 시작한 시위는 경찰의 제지에 막히면서 폭력과 약탈 등 폭동 양상으로 변했다.

시위대는 워싱턴DC에서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통령 비밀경호국(SS)의 차량 3대를 파손했다. 오랫동안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인종차별 문화 속에 흑인층의 분노가 더 거세게 타오르는 모습이다.

뉴욕 월가와 뉴욕증권거래소가 위치한 로어맨해튼 지역에서는 상점 10여곳이 약탈당했다. 가게 영업주는 시위대 습격을 막기 위해 쇼윈도를 나무판으로 막았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시위대가 시 청사 앞에 있는 전 시장의 동상을 밧줄로 묶고 불을 붙였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선 시내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1명이 사망하고 3명 이상이 총상을 입었다.

플로리다주에서는 경찰관이 시위 현장에서 목에 칼을 찔려 병원으로 실려갔고,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는 시위 도중 총격 사건이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

사건이 발생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한인 점포 5곳이 약탈·방화 피해를 보기도 했다. 시위대가 폭력적인 양상으로 번지는 과정에서 의류와 미용용품 상점을 중심으로 상당한 물적 피해가 발생한 것을 전해졌다.

특히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되면서 시위는 들불처럼 빠르게 확산됐다. 또 플로이드를 숨지게 한 경찰 데릭 쇼빈이 플로이드와 아는 사이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분노를 증폭시켰다.


시위대는 고급상점이 밀집한 로스앤젤레스(LA) 멜로즈·페어팩스 애비뉴와 베벌리 힐스 일대 상가를 습격했다. 지난달 30일 밤 LA에 위치한 '로데오 드라이브'에서는 명품 브랜드인 알렉산더 매퀸 매장의 유리문이 파손되고 핸드백 등의 물품이 도난당했다. 인근 구찌 매장 역시 피해를 봤다. 약탈을 시도하던 일당은 경찰이 나타나자 도주했다. 이 때문에 아예 가게 문을 닫는 매장도 생겼다. 대형마트 체인인 타깃은 미국 전역에서 175개 매장을 잠정 폐쇄했다.

한편, 일반 시민과 시위대간 유혈 사태도 일어났다. 텍사스주 댈러스에서는 한 남성이 시위대를 향해 마체테(날이 넓은 긴 칼)를 휘둘렸고, 수십명이 달려들어 이 남성을 구타했다. 곧이어 이 남성은 머리를 피를 흘리고 사지가 뒤틀린 채 실신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백인 우월주의를 상징해온 남부연합 기념물도 시위대의 공격 대상이 됐다. 남북전쟁 당시 옛 남부연합 수도였던 버지니아 리치먼드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는 시위대가 남부연합 기념 동상 등을 훼손하고, "영혼의 대량학살", "반역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서를 남겼다.

폭력 시위로 미전역이 무법천지 상황이 되자 20여개 도시는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동했고, 수도 워싱턴D.C.와 캘리포니아주 등 12개 주(州)가 방위군을 소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국의 많은 지방 행정당국이 동시에 통금령을 내린 것은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 이후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조치와 경제 둔화, 대규모 실직사태 이후 (미국인들이) 플로이드 사건과 관련해 불평등에 대한 고통을 분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군대의 무력 제압 가능성을 내비쳤다. 미 국방부도 성명을 내고 시위가 가장 격렬한 미네소타주 지사의 요청이 있으면 4시간 내에 군대를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미니애폴리스 시위에 대해 "연방정부가 개입해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며 "이는 우리 군대의 무한한 힘을 활용하는 것과 대규모 체포를 포함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시위대를 '폭력배'(Thugs)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약탈이 시작될 때 총격이 시작된다"며 군 투입은 물론 총격 대응 엄포까지 놓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