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거세지는 미국 압박에 '환율대응' 나선 중국…한국 외교 '시험대'

입력 2020-06-01 09:00
[사설] 미·중 충돌, 환율전쟁 비화 조짐…'금융안보' 점검할 때다


중국 인민은행이 위안화 환율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연일 끌어올려(위안화 가치 절하) 작지 않은 파장이 우려되고 있다. 갈수록 격화하는 미·중 갈등이 ‘환율 전쟁’으로까지 비화되면 한동안 안정세를 이어온 한국 등 신흥국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이 다시 고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민은행은 어제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을 전날보다 0.12% 올린 7.1293위안으로 고시했다. 전날 0.38%를 상향 조정한 데 이은 조치다. 이로써 위안화 가치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2월 27일 이후 1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의 전방위 압력에 맞서 중국이 ‘환율 카드’를 들고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중략) … 이유가 무엇이건,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미·중 양국과 긴밀한 교역상대인 한국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위안화와 연동되는 경향을 보이는 원화가치도 동반 하락해 외국인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먼저 거론된다.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 12일 1217원을 ‘바닥’으로 그제 1244원 선까지 올라 두 달 만에 1240원을 웃돌았다. 주가 강세에도 외국인은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3조530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수출에도 불리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올초 체결된 미·중 1차 무역합의의 파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대중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의 중간재가 피해를 입게 된다. 미국은 위안화 환율이 지난해 8월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달러당 7위안 선을 돌파(포치·破七)하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막대한 파장이 우려되는 만큼 정부는 위안화 약세가 가져올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시급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급속한 재정지출 확대로 건전성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판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만큼 대응수단이 제한적이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서둘러, 더 큰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재정을 풀더라도 뼈를 깎는 지출구조조정이 동반돼야 한다. 규제 완화도 기득권 눈치보기에서 벗어나 보다 과감해져야 할 것이다.

통화정책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내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득실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한국은행이 발권력까지 동원하는 마당에 떠밀리듯 금리를 내리는 것은 오히려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 금융·외환위기는 한순간에 국가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더 파국적이다.

‘금융 안보’ 강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5월 27일자><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사설 읽기 포인트
美 '글로벌 경제연합' 구축으로 중국 옥죄기 시작
中, 한국에 '반도체 SOS'…'사드 보복' 재연 안돼야
韓, 개방·호혜평등 보편가치 따른 원칙유지 중요

이른바 ‘사드 보복’의 충격은 오래갔다. 주한 미군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배치 때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심각한 경제 보복을 당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사드배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대응책이었으나, 중국은 자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한국에 보복을 했다. 사드 보복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한국의 경제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자성이 심각하게 나왔으나, 단시일 내에 어쩔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경제제도나 산업시스템은 구축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이나 구조 변경에도 시일이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에 주어진 큰 숙제다.

코로나 사태로 불거진 미국과 중국 간 대립 갈등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원색적인 상호 비방이 반복되고 갈등의 전선도 계속 넓어져 걱정될 수준을 넘어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향해 “악랄한 독재정권”이라고 했고, 중국은 그에게 “책임지지 않는 극단적 정치인”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성명의 당사자를 “또라이”라고 했다.

중국을 압박하고 나선 미국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미국 기술이 활용된 반도체를 중국 화웨이에 수출하지 못하게 막았고, 미 공무원연금의 중국 주식 투자를 중단시켰다. 중국 기업을 제재하는, 3차에 걸친 블랙리스트 발표에 이어 미국 회계기준을 지키지 않는 중국 기업의 뉴욕증시 상장을 막는 법까지 상원에서 통과시켰다. 주목할 사실은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중국 제재에 공화·민주 양당이 한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양국 갈등이 심해질수록 한국 기업들 입장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수출에 크게 기대는 한국 입장에서 두 나라 싸움은 코로나 못지않은 위협 요인이다. 1, 2위 수출상대국인 중국(수출비중 26.8%)과 미국(12.1%)의 대립이 심화되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이상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더한 걱정은 한국에 ‘누구 편이냐’며 입장을 분명히 하라는 요구가 양쪽에서 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경제연합을 만드는 ‘경제번영 네트워크’에 한국의 참여 문제가 지난해 11월에 이미 상의됐다는 기사도 나왔다. 미·중 간 경제·기술·미래 전쟁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중국의 간판기업 화웨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달라”라는 SOS 요청도 반갑지가 않은 상황이다. 교역·통상 문제로 시작된 갈등은 기술·기업 전쟁으로 확대되면서 미래의 패권을 의식한 전면전 양상을 띠고 있다. 그 연장에서 중국발 환율·금융전 조짐이 나타났다.

미·중 갈등을 문재인 정부가 내세워온 ‘전략적 모호성’으로 넘길 수 있는 단계를 넘겼다. 사드 보복 같은 심각한 사태가 재연되지 않게 하려면 한국 외교의 원칙부터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 그 원칙은 개방과 자유무역, 호혜평등과 국제협력, 인권 등 보편적 가치에 기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양국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우리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국익을 지킬 수 있다. ‘시진핑 방한’ 정도로 끝날 상황이 아니다. 우리 정부는 어떤 전략과 대책을 갖고 있나.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