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이 28일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통과시킨 게 발단이 됐다. 국가보안법 통과는 중국이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미국 정부는 "큰 실수"라며 "홍콩이 중국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1992년 제정한 홍콩정책법에 따라 홍콩에 관세, 무역, 비자 등의 분야에서 혜택을 주고 있다. 아시아 금융허브이자 자유무역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했던 것이다. 홍콩의 중국 예속이 심화되자 미국은 결단을 내렸다. 홍콩에 준 특혜인 '홍콩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관심사는 홍콩 특별지위 박탈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미칠 영향이다. 홍콩은 2019년 기준 한국의 4대 수출대상국(수출규모 319억달러)인데, 이 중 약 69.8%(223억달러, 약 27조6000억원) 정도가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제조업 기반이 거의 없는 홍콩에 28조원 규모 반도체가 수출되는 이유가 뭘까. 중국 때문이다. 홍콩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90%는 중국으로 재수출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홍콩의 특별지위가 박탈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얘기가 있다. 관세, 증치세, 물류비 등 제반 비용이 증가할 것이란 전망에 근거한다.
반도체업체 관계자들은 "물류비 등 일부 비용이 증가할 가능성은 있지만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고 말한다. 홍콩 사태가 경영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인 건 맞지만 수출에 큰 차질이 발생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이유를 들어봤다.
① 중국으로 직접 수출하면 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홍콩으로 일정 물량의 반도체를 수출했던 것은 오랜 무역 관행과 수입 업체의 요구가 더해진 결과다. 중국 상하이나 선전 같은 도시가 발달하기 전, 홍콩이 지금보다 '아시아 무역 허브'로서의 위상이 훨씬 높았을 때부터 거래선을 만들어 놓은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수입업체들은 반도체를 받아 선전 등으로 보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제조하는 데 썼다.
수입 업체들도 과거엔 중국 본토보다 홍콩을 선호했다고 한다. 홍콩의 법인세가 16.5%로 OECD 평균(23.4%) 등보다 낮고 중국 본토보다 기업하기 편한 환경이란 이유 때문이다. 항공화물이나 결제통화 측면에서도 수출업체나 수입업체 모두 홍콩이 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 상하이나 선전의 물류시스템도 상당히 발전했기 때문에 큰 불편이 없다는 게 국내 업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수출업체 입장에선 홍콩에 수출하는 것이나 중국 본토에 수출하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다"며 "오래 전부터 구축한 거래선이 있기 때문에 홍콩으로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표 반도체업체 중 한 곳은 중국에 반도체를 직수출하는 금액이 홍콩 수출 금액보다 많다고 한다. 홍콩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홍콩이 특별지위를 박탈당해 홍콩 무역상과 대리점, 법인 전부가 홍콩을 떠난다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다고 해도, 홍콩으로 보냈던 물량을 중국으로 수출하면 되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홍콩이 특별지위를 박탈당한다고해서 홍콩으로 가던 물량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중국 직수출이 늘어나면 초기엔 물류비 등이 증가할 수 있겠지만 결국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②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무관세
중국 직수출이 세금 측면에서 홍콩보다 불리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실일까.
관세 관련해서,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면 반도체 관세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이 중국과 마찬가지로 홍콩에서 들어오는 물건에도 최고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얘기에 근거한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관세와 관련해선 반도체를 수출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부정적인 영향은 없다. 반도체는 국제적으로 '무관세'로 거래되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로 관세가 올라도 반도체는 피해가 없는 것이다.
③ 중국 본토는 증치세 환급이 어렵다던데
홍콩 대신 중국본토로 직수출하면 증치세 환급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한국 업체에 불리하다는 얘기도 있다. 중국(홍콩 포함)은 '제품을 수입하는 업체'에 증치세라는 세금을 매기고 있다. 세율은 기본 17%고 저세율이 13%라고 한다. 일종의 '유통세'다. 수입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할 때는 환급해준다.
증치세를 납부해야하는 주체는 반도체를 수출하는 한국 기업이 아니라 중국 본토나 홍콩에 있는 현지기업이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수석연구원은 "홍콩에서 반도체를 수입하는 업체가 일단 17%를 내고, 반도체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면 환급받는다"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내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국기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이슈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증치세 환급이 어렵게 될 것이란 얘기는 왜 나왔을까. 반도체 수입 업체들이 홍콩에서 중국으로 다 이동할 것을 가정한 것이다. 홍콩이 아닌 중국 본토로 이동하면 증치세 환급을 받는 게 더 까다롭게 될 것이란 인식 때문이다.
실제 외국 기업이 중국 본토에서 증치세를 환급 받는 게 홍콩보다 좀 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까다롭다는 평가가 나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증치세 환급이 어렵더라도 한국 업체가 받는 영향은 몇 가지 가정을 거쳐야 추론할 수 있다. 반도체 수입 업체 입장에선 비용이 증가하는 셈이니,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반도체 가격 인하를 요구하거나 구매 물량을 줄일 것이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이런 가정에 대해서도 반도체업계에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얘기'라고 말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홍콩에서 반도체를 수입하는 업체들은 중국 기업들"이라며 "만에 하나 중국 본토로 옮긴다고 해도 중국기업이라서 증치세 환급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④ 홍콩 특별지위 박탈돼도 한국 반도체에 큰 피해 없어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29일 발간한 '홍콩보안법 관련 미중 갈등과 우리 수출 영향' 보고서에서 반도체 산업의 영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 의견 조사 결과,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무관세이며 직수출에 애로가 없음. 홍콩은 좋은 입지로서 물류창고로 활용도가 높음. 홍콩 중계무역을 제재하면 심천으로 직수출 또는 대만에서 중국 대륙으로 우회 수출할 수도 있고 이 경우는 물류비용이 조금 증가하는 정도지 큰 문제는 없음."
홍콩 특별지위 박탈이 수출산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관한 시나리오는 '미국의 제재로 홍콩의 중계무역 위상이 약화될 것'을 기본 가정으로 한다. 하지만 미국이 특별지위를 박탈한다고 해서 홍콩에 진출한 반도체 수입 기업들이 즉각 홍콩을 떠날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반도체 업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걱정하는 건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보단 시위에 따른 홍콩 공항 폐쇄 같은 것이다. 홍콩 시위가 격화되면서 화물공항이 폐쇄되고 급하게 대체 수출지역을 찾아야하는 '불확실성'을 걱정하는 것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기업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라며 "홍콩 사태는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기 때문에 향후 사태 추이를 면밀히 살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