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거센 압박과 홍콩 시민들의 반발에도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 처리를 강행했다. 미국 정부는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중국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28일 전체회의를 열어 홍콩 보안법을 찬성 2878표, 반대 1표로 가결하고 폐막했다. 이 법은 홍콩에 국가안보기관을 설치하고 외부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과 국가 분열, 테러리즘 활동 등을 금지·처벌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보안법 제정은 홍콩의 장기 번영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인대는 다음달 말께 상무위원회를 소집해 홍콩 보안법을 최종 통과시킬 예정이다.
전인대 표결을 앞두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7일(현지시간) “홍콩이 중국으로부터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의회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의 홍콩 보안법 추진을 “재앙적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홍콩에 부여하고 있는 경제, 무역, 비자 발급 등의 특별지위를 박탈하겠다고 선전포고한 것이다. 미국이 특별지위를 철회하면 아시아 금융허브로서 홍콩의 위상이 흔들리고 글로벌 경제에도 큰 충격이 우려된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美 "보안법은 홍콩시민 자유 침해"…'홍콩 특별지위' 박탈 돌입
미국과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둘러싸고 벼랑 끝 대치에 들어갔다. 미국은 홍콩에 대해 ‘자치권 없음’ 판정을 내리고 특별지위 박탈 절차에 들어갔고 중국은 미국의 압력에도 홍콩 보안법 처리를 강행했다. 양측이 ‘칼’을 빼들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홍콩 운명’, 트럼프 손에
28일 미국 국무부는 중국의 홍콩보안법 가결이 발표된 지 약 다섯 시간 만에 호주·캐나다·영국과 함께 “홍콩 보안법 시행을 강행한 중국의 결정에 깊은 우려가 든다는 걸 재차 강조한다”며 “홍콩보안법은 홍콩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홍콩 자치권을 보호하려는 국제 규약을 훼손하는 일”이라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전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홍콩이 중국으로부터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의회에 보고한 뒤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 박탈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홍콩정책법과 홍콩인권법에 따라 매년 홍콩이 중국으로부터 자치권을 누리는지 평가해 의회에 보고한다. 이 평가에 따라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홍콩에 부여한 무역·관세·투자·비자 등 각종 특별지위를 박탈하거나 홍콩의 자유와 자치권을 해치는 인사를 제재할 수 있다.
미 국무부가 홍콩의 자치권을 부정한 만큼 관심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꺼낼 제재 수위에 쏠리고 있다. 홍콩 보안법을 주도한 중국 당국자에 대한 비자 제한, 금융거래·미국 내 자산 동결이 이뤄질 수도 있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비자·경제 제재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아시아 금융허브이자 중국과 외부 세계를 잇는 교역 중심지로서 홍콩의 지위가 크게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홍콩 주재 유럽 외교관의 말을 빌려 “홍콩 보안법에 따라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의 생존력에 깊은 의문이 제기된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홍콩에 대한 투자 결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했다.
미 하원은 이날 위구르족 탄압에 관여한 중국 당국자들을 제재할 수 있는 ‘위구르 인권정책법안’을 413 대 1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키며 중국에 대한 압박을 더했다. 이 법안은 지난 14일 상원을 통과해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놓게 됐다. 미 행정부와 의회의 대중 강경론은 미국 사회 전반에 퍼진 반중(反中) 정서를 반영한다는 평가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에 비호감을 가진 미국인 비율은 2018년 47%에서 2019년 60%, 올해 3월 66%로 높아졌다.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05년 이후 최고다.
28일 뉴욕타임스(NYT)는 다수의 미국 관료를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인민해방군과 관계가 밀접한 대학의 중국인 대학원 유학생·연구원 수천 명의 비자를 취소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미국 제재 제한적”
중국은 ‘후퇴는 없다’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리커창 총리는 이날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홍콩보안법을 만든 것은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의 안정과 홍콩의 장기적인 번영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일국양제는 국가의 기본 정책으로 중국은 시종일관 일국양제와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 고도 자치를 강조해왔다”며 “홍콩특별행정구 정부와 행정장관의 법에 따른 통치를 지지한다는 입장은 일관된다”고 강조했다. 리 총리는 미국의 경고에 “미·중 간 싸움은 양국은 물론 전 세계에도 좋지 않다”고 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8일 사설에서 “미국의 제재 수단은 매우 제한적”이라며 “미국이 중국을 겁박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했다.
중국의 반격 카드로는 우선 미 국채 매각이 꼽힌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지난 3월 말 기준 1조800억달러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중국이 미 국채를 일시에 대량 매도하면 달러가치와 미 채권 가격 급락(금리 급등) 등 미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애플, 퀄컴, 시스코, 보잉 등 미국 기업을 블랙리스트(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에 올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 기업은 중국 당국의 고강도 조사를 받고 중국 기업과의 거래도 차단될 수 있다.
인위적인 위안화 평가 절하,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미·중 1단계 합의에 따른 미국산 제품 구매 중단 등도 중국이 꺼낼 수 있는 카드라는 관측이 나온다.
베이징=강동균/워싱턴=주용석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