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소고기, 돼지고기 등 육류를 담보로 잡은 대출 상품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의 환매가 연기됐다. 지난해 라임자산운용 사태로 시작된 사모펀드 환매 연기 행렬이 해외 부동산에 이어 육류 등 대체투자 자산 전반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글로벌원자산운용은 이달 ‘글로벌원커머디티전문사모펀드’ 만기를 앞두고 투자자에게 환매 연기 소식을 알렸다. 해당 펀드는 총 60억원 규모로 지난해 5월 설정됐다. 개인투자자와 법인 등이 주로 투자했다.
글로벌원커머디티펀드는 육류 유통업자에게 펀드 자금을 대출해 이자 등의 수익을 얻는 구조로 짜여졌다. 창고에 보관 중인 수입육 등 육류를 담보로 잡는다는 점에서 육류담보대출과 비슷하다. 시중에 즉시 판매가 가능한 육류 실물을 담보로 잡기 때문에 부동산같이 유동화가 어려운 자산과 달리 비교적 안전한 상품으로 평가됐다. 설정 당시 제시된 목표 수익률은 연 7.9%였다.
그러나 펀드 만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담보로 잡았던 육류가 서류상 수치보다 훨씬 적은 양만 창고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펀드로부터 대출받은 중개업자(차주)와 실제 창고를 가진 수입 유통업자 간 육류 거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담보물인 육류에 대한 권리가 모두 펀드로 넘어오지 못한 것이다. 운용사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외식과 단체급식 등 육류 수요가 줄어 일부 육류 유통업체가 부도를 맞은 것도 손실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원운용은 뒤늦게 차주를 상대로 고소를 진행하면서 담보물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등 법적 절차에 들어갔지만 회수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해당 펀드 운용을 맡았던 담당자는 지난 3월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펀드 투자자는 “평소 거래해온 프라이빗뱅커(PB)가 ‘창고에 보관 중인 수입육에 투자하는 펀드라 절대 원금 손실 날 일 없다’고 권유해 믿고 1억원을 넣었는데 황당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관련 업계에서는 2016년 금융권을 뒤흔든 ‘육류담보대출 사기사건’이 연상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시 대출 중개업자와 유통업자가 결탁해 육류담보를 위조한 뒤 여러 금융회사에서 중복으로 대출받는 수법으로 5700억원 규모 대출 사기사건이 터졌다. 동양생명은 이 건으로 4000억원가량 손실을 봤다. 한 육류전문 금융회사 대표는 “육류담보 금융은 육류 유통시장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해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라며 “운용사가 담보로 잡은 육류의 창고 실사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글로벌원운용 사모펀드에서 또다시 환매 연기가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원운용은 지난달 인도네시아 주식 담보대출 펀드인 ‘글로벌LUX전문사모펀드’ 중 450억원가량의 환매를 연기했다. 2011년 설립된 부동산자산운용사인 아주자산운용이 전신인 글로벌원운용은 2015년 전문사모운용사 등록 후 대체 투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운용 자산을 불려 나갔다. 2018년 말 1469억원이던 펀드 설정액은 작년 말 3945억원까지 늘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라임펀드 이후 호주·독일 부동산과 이탈리아 의료비 채권, 디스커버리, 개인 간(P2P) 금융에 이어 육류담보까지 줄줄이 만기 상환에 실패하면서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자 불신이 계속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