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레고처럼 병원을 쌓을 수 있다면

입력 2020-05-26 18:22
수정 2020-05-27 00:1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의 진원지 후베이성 우한에 병원 16개를 10여 일 만에 지어 1만3000여 개 병상을 마련했다. 이 병원에는 중증환자를 집중 치료할 수 있는 음압시설도 설치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대형 컨벤션센터를 임시 병원으로 개조했고, 미국 뉴욕항엔 1000개의 병상을 갖춘 병원선 컴포트호가 들어왔다. 집중치료 병상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각 국가가 내놓은 대응책이다.

병상이 부족한 상황에서 팬데믹(대유행)이 장기화될 때 전문가들은 단기간에 병상을 확보할 수 있는 모듈러 건축공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3차원(3D) 레고 블록 형태의 육면체 안에 창호와 외벽체, 전기배선 및 배관, 욕실, 주방기구 등 각 부품을 공장에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공법이다. 공기를 50% 이상 단축할 수 있다. 감염병 발생 시 임시병원 시설부터 의심 환자 격리시설까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사용 후엔 임시 주거용으로 전용(專用)할 수도 있다.

중국은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시에도 모듈러 건축공법을 활용해 임시 병원시설을 지었다. 재난재해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모듈러 임시병원 표준설계안을 미리 마련해 둔 것이다. 한국에서 재난재해와 관련해 모듈러 건축공법이 대안으로 제시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도 ‘재난·재해 대비 임시거주공간 시스템 개발’ 등 관련 연구를 해왔다. 2014년 대북지원단체인 유진벨재단과 협력해 결핵 환자용 모듈화 병동을 북한에 보낸 적이 있고, 작년에 강원도 산불로 9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도 모듈형 임시주거시설이 공급됐다.

그러나 기술이 준비돼 있다고 하더라도 관련 정책과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으면 현장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격리소, 요양소, 진료소 등 다양한 용도의 임시시설에 대한 필요성은 언급돼 있지만 설치 기준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모듈러 임시병동을 위한 음압시설과 항바이러스용 공조장치 등에 대한 기준도 따로 없다.

모듈을 미리 제작해 놓은 뒤 재난 발생 즉시 이동·설치할 수 있는 공급관리체계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나 지자체 단위별로 모듈러 비상용 건축물에 대한 생산·보관·공급체계가 구축돼 있어야 하며 구체적인 활용·운영 방안까지 마련돼 있어야 한다.

한국은 코로나19를 빠르게 통제하고 있다.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감염병 확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관련 정책과 제도를 세밀히 정비해야 한다. 모듈러 건축도 마찬가지다. 레고처럼 신속하게 쌓을 수 있는 모듈러 병동에 대한 제도 및 공급 체계가 갖춰진다면 더욱 안전한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