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확대 기조를 밀어붙일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코로나 사태와 관련, “그야말로 경제 전시(戰時)상황”이라며 “전시 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정부의 재정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 2차 추경을 뛰어넘는 3차 추경안을 신속히 준비해 6월 중 처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당부하기도 했다. 내년 예산안과 중기(2020~2024년) 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하는 전략회의에서 ‘재정 총동원령’을 내린 것이다.
대통령이 재정 확대를 강도 높게 주문한 만큼 앞으로 재정 지출액은 가파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다음달 국회에서 처리될 3차 추경 규모도 1차(11조7000억원)와 2차(12조2000억원)를 크게 웃도는 30조~50조원이 거론되고 있다. 3차 추경액을 최소 30조원으로 잡아도 이를 포함한 올해 총예산은 560조원 안팎에 달한다. 이를 위해선 금년에만 100조원 이상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럴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 37.1%에서 45%까지 뛰게 된다.
급속한 재정건전성 악화는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치명적이다.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국가채무의 절대량보다도 증가 속도가 국가신용등급 평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가신용등급의 하락은 외채 이자비용을 키우고 환율 상승(원화 약세)을 초래해 외국인 자본 이탈을 촉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어제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균형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문 대통령이 “충분한 재정 투입을 통해 빨리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여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좀 더 긴 호흡의 재정투자 선순환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언급한 것이 전부다.
국가재정전략회의의 근거법인 국가재정법에선 “정부는 건전재정을 유지하고 국가채무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86조)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장의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 확대방안과 더불어 건전재정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도 난상토론이 이뤄져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지금과 같은 초유의 위기상황에서 재정의 역할을 부인하는 게 아니다. 다만 중장기 시야에서 나라살림의 큰 그림을 그리는 재정전략회의라면 단순히 확장 재정을 추인하는 통과의례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돈을 쓰더라도 좀 더 효율적으로 쓸 방안을 깊이 토론하고, 나중에 나라곳간을 다시 채울 대책도 함께 제시됐어야 했다. 예컨대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비율 등을 일정 수준에서 억제토록 아예 법에 못 박는 ‘재정준칙’의 도입 등이 심도 있게 논의됐다면 빗장 풀린 재정 확대를 바라보는 국민의 걱정도 조금은 덜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