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상생협약 지원한다면서 예산은 '쥐꼬리'

입력 2020-05-24 17:59
수정 2020-05-25 01:23
근로자가 임금을 양보하는 대신 고용을 유지하는 노·사·정 대타협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정부도 이 같은 내용으로 노사 협약을 맺은 기업을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 예산은 ‘쥐꼬리’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노사 상생협약을 독려하고는 있지만 실제론 그 가능성을 낮게 보고 ‘생색내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총 10조1000억원 규모의 고용안정패키지 대책을 발표했다. 구직급여(실업급여) 기금 등 3조7000억원, 공공 및 청년일자리 창출 3조6000억원, 특수고용직 종사자와 무급휴직 지원금 1조5000억원 등이 주요 내용이다.

대책 중에는 노사가 고용유지 협약을 맺으면 해당 사업장에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도 포함됐다. 노조가 임금 감소를 수용하면 사측이 일정 기간 고용을 보장하는 식이다. 정부는 지난 13일 지원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해당 내용(22조 2항)을 신설하는 고용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3차 추가경정예산이 확보되면 곧바로 시행하기 위해 현재 구체적인 지원 대상, 요건 등을 정하는 고시를 마련하고 있다.

문제는 관련 예산이 500억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임금 감소분의 50%를 6개월간 지원하는 수준으로 가닥을 잡았다. 어느 기업이 근로자 1인당 월 100만원씩 임금을 줄이는 대신 고용을 보장했다면 직원 1인당 50만원씩 6개월간 총 300만원을 지급받는다. 500억원이면 상시 근로자 1000명인 중견기업 16곳을 지원하면 잔액이 바닥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2009년 금융위기 당시 노사 협약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정책이 있었지만 이런 방식의 지원은 처음이라 수요 예측이 쉽지 않다”며 “일단 500억원으로 잡아놓긴 했지만 향후 얼마나 신청이 들어올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 설계는 여전히 적대적인 노사관계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4월 한 달에만 취업자 수가 47만6000명 줄고 일시 휴직자가 150만 명에 육박하는 등 코로나19로 인한 직접적인 고용 충격이 200만 명을 넘는 상황에도 노사가 손잡고 위기 극복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정부가 판단했다는 얘기다.

500억원은 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고용안정패키지 예산(10조1000억원)의 0.5%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전체 예산과 비교하면 0.02%에 불과하다. 과소 편성에 대한 지적은 정부 내에서도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과거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도 임금 감소를 감수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노사 합의가 많지 않았다”며 “그런 노사관계 현실을 감안해서 책정한 것이겠지만 코로나19 대처에 전례없이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 적은 예산”이라고 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