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22일(09:0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벌크전용선 업체 에이치라인해운 기관투자가(LP) 교체에 성공했다. 조(兆) 단위 금액으로는 국내 첫 사례다. 하나금융지주가 에이치라인해운에 1조1000억원을 투자하는 통 큰 베팅에 나서 주목된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앤컴퍼니는 에이치라인해운 투자자 교체 작업을 이달 중 마무리할 예정이다. 오는 2024년 만기가 돌아오는 기존 펀드의 투자자를 교체하기로 지난해 결정하고 신규 투자자 모집 작업을 진행한 지 1년 만이다. 한앤컴퍼니는 1조5000억원 규모의 새로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에이치라인해운을 넘길 계획이다. 7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인수금융으로 8000억원으로 조달할 예정이다.
국내 PEF 중에서 조 단위 규모의 LP 교체 거래를 성사시킨 것은 한앤컴퍼니가 처음이다. 한앤컴퍼니는 2014년 한진해운의 벌크전용선 사업부를 5500억원에 인수한데 이어 이듬해 현대상선의 벌크전용선 사업부를 1200억원에 인수했다. 투자 원금이 67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기존 LP들은 투자 6년 만에 투자원금 대비 123%의 수익을 거뒀다. 인수금융 리파이낸싱 등을 통해 배당 받은 것까지 포함하면 수익률은 더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앤컴퍼니가 LP 교체에 성공한 것은 에이치라인해운의 장점을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이치라인해운은 국내 2위 벌크전용선업체다. 포스코,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등 대기업들과 20년 안팎의 장기 공급계약을 맺고 있다. 에이치라인해운이 도로나 항만 등 장기간 안정적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인프라성 자산이라는 점을 잘 부각해 LP들에게 설명한 것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LP들이 경영권 거래보다 인프라성 자산 투자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도 이번 거래가 성사된 원인으로 꼽힌다.
하나금융지주가 주요 LP로 참여한 것도 거래 성사에 큰 역할을 했다. 시장에서는 한앤컴퍼니가 요구했던 가격이 높다고 생각해 전체 펀드금액 7000억원 중 2000억~3000억원 가량의 모집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하나금융지주는 하나은행이 1000억원, 하나금융투자가 2000억원을 투자키로 하면서 빈 곳을 메웠다. 하나금융투자는 재판매를 통해 국내 연기금 및 공제회, 캐피탈사 등에 물량을 넘긴다는 계획이다. 하나금융지주는 펀드 투자를 통해 8000억원 규모의 인수금융 주선사도 맡게 됐다. 전체 규모 1조5000억원 가운데 70% 이상을 하나금융지주가 책임지는 셈이다.
하나금융지주가 한앤컴퍼니에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선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게 금융업계의 평가다. 하나은행은 2017년 한앤컴퍼니가 단행한 6300억원 규모의 에이치라인해운 인수금융 리파이낸싱 당시 금리나 조건이 내부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아 참여하지 못했다. 2년여 만에 하나은행이 인수금융보다 투자 위험성이 큰 지분 투자까지 나서면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직접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김 회장은 내년 3월 연임을 앞두고 수백억원 대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투자를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하나금융투자가 2000억원의 펀드 투자금을 재매각하지 못할 경우 기존의 부동산 등 해외 대체상품 미매각 물량까지 포함해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IB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먹거리가 떨어지자 하나금융지주가 과감하게 나선 것 같다”며 “다만 코로나19 이후 국내 캐피탈사 등 LP들이 출자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지분 재매각 등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