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구성된 금통위…코로나 극복 돈풀기 신중해야

입력 2020-05-25 09:01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국은행 이야기입니다. 한국은행이 상당히 달라질 것 같습니다. 한국은행의 의사결정은 금융통화위원회가 하는데요. 금융통화위원이 지난달 ‘문재인표’로 교체되었습니다. 7인으로 구성되는데요. 한국은행 총재와 부총재인 당연직 2명이고 각계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이 5인입니다. 당연직인 이주열 총재와 부총재는 문재인 정부에서 연임되었습니다. 나머지 5인 중 작년에 1인, 이번에 3명 교체돼 5인 중 4명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정책도 ‘문재인식(式) 경제철학’에 따를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비둘기파 성향 보일 가능성 큰 새 금융통화위원회

가장 큰 변화는 물론 돈이겠죠. 돈이 많이 풀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금통위원은 돈 풀기에 대한 입장에 따라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눠 부릅니다. 미국 중앙은행(Fed) 연준위원을 hawks와 doves로 부르는 것에서 연유하죠. 매파는 함부로 풀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 즉 물가안정을 중시하는 거죠. 반대로 비둘기파는 돈 좀 풀면 어떠냐, 물가보다 경기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입장입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은행 출신들은 매파인 경우가 많고요. 소위 진보 성향 경제학자들은 비둘기파 경향이 강하죠. 문재인표 금통위원회는 비둘기표일 가능성이 큽니다.

결정적인 것은 한국은행이 회사채를 매입하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기업이 부도 위기에 놓였죠. 기준금리를 낮춰서 은행에 자금을 공급해줘도 은행이 기업들에 대출을 안 해줍니다. 다급해진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려 해도 팔리지 않습니다. 팔리지 않은 회사채를 한국은행이 사주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은행은 일반 기업에 대한 여신을 거의 해주지 않았습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만 있었죠. 한국은행법이 영리법인에는 원칙적으로 여신을 못하게 돼 있습니다. 아주 예외적일 때, 금통위원 4인이 찬성하면 가능하게 돼 있죠. 그런데 금통위원이 대부분 교체되었으니 아마도 가능하게 될 것 같습니다.

급한 불 끄기 위해 돈 풀더라도 신중해야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함이지만 그래도 걱정됩니다. 회사채를 매입한다는 것은 신용이 낮은 회사의 채권을 사준다는 것입니다. 당장 부도는 막을 수 있지만 시장 기능은 무너지죠. 그러기 시작하면 돈 풀리는 것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서 외환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은행이 회사채 매입을 안 했다고 해서 부도 기업들이 그대로 방치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죠. 부도에 몰린 대우조선해양에 산업은행이 돈을 대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기간산업지원에 40조원 플러스알파, 소상공인 지원에 35조원, 긴급고용안정대책에 10조원 등 많은 지원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경기부양책을 하더라도 정부의 적자재정과 기준금리 인하였습니다. 즉 한국은행은 정부와 은행에 돈을 댄 것이죠. 정부를 위해서는 국채를 매입해주고 은행을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낮춰 간접적으로 경기부양을 도왔습니다. 이 방식은 통화관리의 관점에서 보면 꽤 잘 작동했습니다. 정부는 국가부채 비율을 신경 쓰고 은행은 자기의 신용등급을 걱정할 테니 무한정 돈 풀기가 견제되는 겁니다. 그 덕분에 물가 수준도 그렇고 환율도 그럭저럭 잘 방어해낸 것이죠. 그런데 한국은행이 직접 기업에 돈을 대주기 시작하면 제방 둑이 무너지는 격일 수 있죠.

달러·엔화는 안전자산…원화 뿌려대다 외환위기 올 수도

미국 일본 유럽 등도 그렇게 하는데 왜 우리는 못 하냐고 말들을 합니다. 미국 Fed는 투기등급 채권인 정크 본드까지 매입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돈이 엄청나게 풀리는 거죠. 그 실적은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에 드러나는데요. 자산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돈을 풀어 사들인 회사채 국채 이런 것들이 다 중앙은행의 자산이죠. 주요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중앙은행 자산비율 평균은 2008년 이전까지 10% 수준이었는데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히 늘어서 35% 수준까지 높아졌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 얼마나 더 높아질지 모릅니다. 그야말로 돈을 뿌려대는 것이죠.

그런데도 이 나라들은 멀쩡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 나라들과 아직 다릅니다. 이 나라들의 돈, 특히 미국과 일본 돈은 안전자산입니다. 위기가 오면 오히려 가치가 높아져요. 하지만 돈 중에는 안전자산이 아닌 것도 많죠. 아르헨티나 생각해 보세요. 작년 물가상승률이 54%예요. 국가 부도도 여러 번 겪었죠. 돈이 풀린 결과입니다.

한국의 원화도 안전자산이 아닙니다. 조금 위험하다 싶으면 투자자들이 팔아버리지요. 4월 19일 한·미 통화스와프 이전에 환율 치솟던 거 생각해 보세요. 미국, 일본이 그렇게 한다고 한국도 따라 할 수는 없는 겁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한국은행의 회사채 매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 위기만 넘기면 다시 정상 가동할 수 있는 기업만 구제해야 합니다. 굉장한 절제와 전문가적 식견이 필요한 겁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은행은 정치로부터 상당한 독립성을 확보했습니다. 그 덕분에 물가도 잘 잡았고 환율도 그럭저럭 잘 방어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국은행이 다시 정치에 휘둘릴까 봐 걱정입니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이야기가 바로 우리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랍니다. 금통위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른 식견과 양심과 용기를 가진 분들이길 바랍니다.

김정호 < 서강대 겸임교수 >

NIE 포인트

① 한국은행과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과 역할은 무엇이며 정부와 별개의 독립기구로 세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②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풀어야 한다는 비둘기파와 경기 과열이 우려되므로 통화량을 줄여야 한다는 매파의 주장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때는 언제일까.
③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 돈을 풀더라도 미국·일본과 달리 한국은 조금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