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미 증시에서 사기 치지 못하게 하겠다”며 20일(현지시간) 중국 기업의 뉴욕증시 상장에 제동을 걸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 공무원연금의 중국 주식 투자를 금지한 지 열흘도 안 돼 ‘중국 때리기’에 가세한 것이다. 단순한 ‘말 폭탄’을 넘어 중국 기업의 자금줄을 조이는 ‘실력 행사’에 나서면서 미·중 갈등이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미 국무부는 이날 대만에 1억8000만달러어치 신형 어뢰 판매를 승인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을 자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촉발된 미·중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의회도 ‘중국 때리기’ 나서
미 상원이 중국 기업의 상장 제한 법안을 처리한 표면적인 이유는 ‘중국 기업의 회계 투명성 부족’이다. 회계 기준에 맞지 않는 기업이 증시에 상장돼 거래되면 미국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논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기업들이 그동안 자국 회계법인이나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회계법인을 외부감사인으로 지정하면서 미 회계감독기구가 회계 자료에 접근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그동안 이런 문제는 유야무야됐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최근 ‘중국판 스타벅스’로 불리는 루이싱커피의 회계 조작에 미·중 갈등까지 맞물리면서 미 의회 분위기가 강경해졌다. 미 상원은 이날 자국 회계기준을 맞추지 못하거나 외국 기업의 소유·통제를 받는 기업, 미 회계감독당국의 자료 제출 요구에 3년 연속 응하지 않는 기업의 미 증시 상장 및 거래를 제한하는 ‘외국기업책임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미 CNBC는 “만장일치 법안 통과는 중국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처와 미 회계기준을 회피하려는 지속적인 시도에 대한 의원들의 분노를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상원의 이날 법안 처리는 미 행정부 차원에서 이뤄진 ‘중국 때리기’에 의회가 본격 가세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美, 중국과 자본시장에서 관계 끊기
미 상원을 통과한 법안이 하원 및 대통령 서명을 거쳐 법제화되면 중국 기업은 미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어려워진다. WSJ는 중국 기업들이 1997년 이후 미 증시에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660억달러를 조달했으며 지난해 미 상장기업의 18%인 25개사가 중국 기업이었다고 보도했다. 미 증시엔 알리바바, 바이두 등 중국 대기업도 다수 상장돼 있다. 이들 기업이 계속 상장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시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1일엔 미 최대 퇴직연금인 공무원연금의 중국 주식 투자를 금지했다. 자본시장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끊어내고 있는 것이다.
미·중 갈등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미 국무부는 20일 대만에 신형 어뢰 판매를 승인했다.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를, 그것도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 개막일에 맞춰 건드린 것이다. 백악관은 별도 보고서에서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고 중국에 더 투자하면 자유화할 것이란 믿음이 잘못됐다”며 “중국 내 경제·정치 개혁의 범위를 제한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의지를 과소평가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국을 겨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에서 “중국의 어떤 또라이(wacko)가 수십만 명을 죽인 바이러스에 대해 중국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며 “이 얼간이(dope)에게 세계적으로 대규모 살상을 저지른 건 다름 아닌 중국의 무능이라는 것을 설명 좀 해주라”고 비난했다.
이어 폼페이오 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중국은 1949년 이후 악랄한 독재 정권,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통치돼 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