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기업가치는 스토리로 말하고 숫자로 증명한다

입력 2020-05-21 17:45
수정 2020-05-22 02:16
페라리는 세계적인 슈퍼카 브랜드다. 페라리를 타고 레이싱을 즐기는 글로벌 부호들의 모습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만약 ‘기업 페라리’의 예상 매출과 영업이익, 현금흐름 등이 담긴 재무제표를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가치투자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애스워드 다모다란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의 신작 《내러티브 앤 넘버스》에 등장하는 예시다. 저자에 따르면 세상 사람들은 ‘스토리텔러(Storyteller·이야기하는 사람)’와 ‘넘버크런처(Number cruncher·수치를 계산하는 사람)’라는 두 부족으로 구분된다. 두 부족에 페라리의 주식가치를 매겨보라 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스토리텔러들은 페라리가 값비싸고 희소성이 높은 브랜드란 점을 강조하고, 넘버크런처들은 페라리의 회계적 측면에 주목할 것이라고 말한다.

다모다란 교수는 《투자철학》 《주식 가치평가를 위한 작은 책》 등 국내에 번역된 책들을 통해 기업 가치평가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한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스토리텔러와 넘버크런처의 능력 모두를 지녀야 한다”며 “스토리가 뒤를 받쳐주지 않는 가치 평가는 영혼과 신뢰성이 없으며, 숫자가 없는 스토리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훌륭한 스토리텔링 요소와 넘버크런칭 도구를 결합한 새로운 내러티브 창조 방법을 제시한다. ‘좋은 스토리’는 네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다. 단순하고, 믿을 수 있으며, 진솔하고, 감성을 건드린다. 이를 충족하려면 간결한 기승전결과 스토리를 떠받칠 객관적 사실, 담백한 묘사가 필요하다. 넘버크런처로서 성공하려면 데이터 수집과 분석, 제시 과정에서 조사자의 편향이 들어가면 안 된다. 저자는 “수많은 숫자와 복잡한 그래프로 의사결정자를 현혹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책 제목에도 나오는 내러티브는 기업의 이야기를 조직하고 전개하기 위한 각종 전략이나 형식을 가리킨다. 저자에 따르면 좋은 내러티브를 구축하려면 스토리텔러와 넘버크런처의 역량이 한데 뭉쳐야 한다. 데이터는 스토리를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스토리만으로는 결코 기업을 판단할 수 없다. 차량 공유서비스 스타트업 우버와 석유 대기업 엑슨모빌을 설명하는 내러티브는 각각 다른 전략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업계 특성과 시장 성장 가능성, 회계, 기업의 슬로건 등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이 처음 학생들에게 가치평가 수업을 했을 땐 그들이 ‘넘버크런처 부족’이었고, ‘스토리텔러 부족’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현재는 스토리를 숫자로, 숫자를 스토리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장에서 가격이 가치보다 낮다고 생각되면 신생기업이든 전통적 기업이든 가리지 않고 매수한다고 밝힌다.

책의 제목이자 결론인 ‘내러티브와 넘버스’는 상호 보완적 관계다. 저자는 “경영인들은 투자자와 직원, 고객을 끌어들이고 성공적인 사업을 영위하려면 비즈니스 스토리를 체계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가치투자를 공부하는 독자들에겐 “스토리와 숫자의 중간다리를 읽어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