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비용항공사(LCC)들이 정부발(發) 구조조정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생존 위기에 몰린 LCC에 대해 정부가 선별 지원 방침을 굳히자 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정부가 ‘LCC 모두를 살릴 수 없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관련 업체들의 불안도 증폭되고 있다.
제주항공·에어부산 두 곳만 요건 충족
금융위원회가 지난 20일 발표한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기준에 따르면 국내 7개 LCC 중 지원 요건을 충족하는 항공사는 제주항공과 에어부산뿐이다. 나머지 5곳은 ‘직원 300명 이상이면서 총차입금 5000억원 이상’이라는 기준에 발목이 잡혔다.
진에어·티웨이항공·이스타항공·에어서울 등은 항공기 리스비를 모두 더해도 차입금이 5000억원에 미치지 못한다. 신규 LCC인 플라이강원은 직원 수, 차입금 규모 모두 요건에 미달한다.
정부의 선별 지원은 LCC업계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지원 대상에 차입금 5000억원이라는 조건을 내건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소수 LCC만 남기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면허를 받은 신규 LCC는 올해 3월 정부가 발표한 ‘LCC 3000억원 지원’에서도 배제됐다.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LCC들은 ‘급격한 매출 감소 등 경영상 어려움으로 국민경제·고용안정·국가안보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한 경우’라는 예외조항에 희망을 걸고 있다. LCC들이 이런 예외조항에 해당될지는 미지수다.
해외여행 대중화 이끈 LCC 벼랑 끝에
LCC는 그동안 값싼 항공요금을 앞세워 국민들의 해외여행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등 단거리 노선을 집중적으로 개척한 것은 물론 제주(제주항공) 대구(티웨이항공) 청주(이스타항공) 부산(에어부산) 등 지방공항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일본·중국·동남아 노선 여객 수는 LCC 출범 직후인 2009년 4250만 명에서 지난해 7835만 명으로 급증했다.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등 일부 LCC는 탄탄한 일본 및 동남아 여객 수요를 바탕으로 대형 항공사와 어깨를 겨룰 정도로 성장했다.
시련은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한 지난 2월 시작됐다. 중국 일본 등이 잇따라 한국발 여객기에 입국을 제한하면서 7개 LCC 중 제주항공을 제외한 6개 항공사가 국제선 정기 운항을 일제히 중단했다. 이달 1~20일 전체 7개 LCC의 국제선 여객 수는 2350명으로 코로나19 확산 전인 올 1월 같은 기간(152만5122명)에 비해 99.8%나 줄었다. 지난해 일본 여행 불매운동으로 ‘체력’이 약해진 LCC들은 당장 급한 현금이라도 확보하려고 적자를 감수하면서 제주 노선 항공권을 헐값에 판매하기도 했다. 또 수요가 많지 않은 김포~김해 노선에 일제히 취항하는 등 국내선 출혈 경쟁까지 벌였다.
‘마지막 희망’ 국제선 재개 검토
LCC들은 올여름 국제선 운항 재개에 생존을 위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코로나19가 안정될 경우 각국이 국경을 다시 열게 되면 한국인들의 해외여행 수요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운항 재개 계획도 속속 내놓고 있다. 에어부산은 7월부터 부산~홍콩·마카오 노선을 포함해 중국·일본·동남아 노선에 대한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진에어와 티웨이항공도 6~7월부터 국제선 정기편 운항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국제선 운항 재개 여부는 각국 정부의 해제 조치가 선행돼야 가능하다. 이 같은 불확실성이 걷히기 전까지는 LCC 경영난이 지속될 전망이다.
일부 항공사는 중장기 생존전략을 짜기 위해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최근 아시아나항공 출신 항공 전문가인 김이배 부사장을 대표로 선임했다. 이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과 이스타항공 인수 작업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제주항공은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노력의 하나로 총 17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기로 했다. 티웨이항공은 호주 키르기스스탄 크로아티아 등 중·장거리 노선에 취항하기 위해 에어버스로부터 300석 이상의 중대형 항공기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