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질병이 있다. 하나는 외부 세균에 감염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몸의 내부 면역체계가 교란돼 스스로 파괴되는 것이다. 경로는 전혀 다르지만 결말은 똑같다. 죽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가운데 세균과 면역을 각각 다룬 신간들이 나왔다. 《공기의 연금술》로 유명한 과학분야 저술가 토머스 헤이거의 《감염의 전장에서》와 뉴욕타임스 과학전문기자 출신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맷 릭텔의 《우아한 방어》다.
《감염의 전장에서》는 세계 최초의 항생제인 설파제를 발명한 공로로 193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독일 의학자 게르하르트 도마크의 일대기를 소개한다. 세균과 맞섰던 당시 과학자들과 의료진의 고군분투도 비중 있게 다룬다. 도마크는 의대에 다니다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병들을 치료했다. 그는 감염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며 세균을 이같이 묘사한다.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심술궂고 비겁하게 사람을 살해하는 지독한 적이다.”
루이 파스퇴르의 연구를 계기로 인류는 세균으로 인한 감염병의 존재를 알게 됐다. 유럽 각국에서 세균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독일 제약사 바이엘은 세균을 박멸할 존재를 ‘마법 탄환’이라 불렀다. 도마크는 설파제를 통해 세균 감염 방지라는 소원을 이뤘다. 설파제는 바이엘의 ‘마법 탄환’이 됐다. 설파제가 보급되면서 산욕열로 인한 산모 사망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병원에서 출산하는 산모들은 산욕열에 걸려 4명 중 1명꼴로 숨졌다. 설파제가 나온 후엔 사망률이 4%대로 낮춰졌다.
항생제의 발명은 의사와 병원의 역할도 바꿨다. 1930년대만 해도 의사는 병원에 상주해 근무하는 대신 각 가정에 왕진을 다녔다. 하지만 설파제 덕분에 병원 내 위생이 크게 개선되면서 환자들이 병원에 와서 치료받게 됐다. 의료 기술의 비약적 발달로 환자 치료 성공률이 크게 올라갔다. 의사의 위상도 덩달아 높아졌다.
헤이거는 설파제와 도마크의 공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설파제는 항생제의 시대를 열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연쇄구균 인두염, 베인 상처 감염, 성홍열, 수막염, 폐렴을 비롯한 수많은 감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나와 학교 친구들이 살아남은 건 항생제 덕분이다.”
《우아한 방어》는 신체의 면역체계가 스트레스, 화학물질, 약품 오남용, 급격한 사회 변화로 인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소개한다. 책 제목은 우리 몸에서 작동하는 면역 시스템의 균형을 가리킨다.
이 책엔 네 명의 환자가 등장한다. 저자의 가장 친한 친구 제이슨 그린스타인은 2010년 5월 어느 날 밤, 자신이 호지킨병에 걸렸다는 징후를 발견한다. 호지킨병은 면역세포가 종양으로 변하면서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악성림프종의 한 종류다. 워싱턴DC에서 일하는 변호사이자 게이 커뮤니티에서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기던 동성애자 밥 호프는 1977년 후천성면역결핍증, 이른바 에이즈(AIDS)에 걸렸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체내 면역세포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다. 골프선수 출신으로 대형 컨설팅 회사의 중역을 맡고 있는 린다 세그레는 1996년 류머티즘성 관절염에 시달리게 됐다. 명문대 졸업생인 메러디스 브래디컴은 1998년 원인 불명의 끊임없는 고열과 염증, 햇빛 알레르기로 괴로워하다가 루푸스 진단을 받았다. 류머티즘성 관절염과 루푸스 모두 자가면역 질환이다. 원인 모를 이유로 몸속에서 면역세포들끼리 싸우는 병이다.
저자는 이들의 투병 사례를 중심으로 “내 몸속 평화 유지군이 갑자기 돌변해 경찰국가가 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면역계가 방어뿐만 아니라 공격 역할도 담당하며, 우리 몸의 ‘우아한 방어체계’가 무너지면 면역세포의 자아 및 타자 인식 과정이 마비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T세포와 B세포, 수지상세포와 자연살해세포 등 각종 면역세포를 상세히 안내한다. 면역학의 기본 용어와 최신 이론들, 그동안 명명된 적이 없었던 질병들도 소개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피폐함, 스페인 독감과 소아마비 등의 팬데믹, 아폴로 11호 발사 등 역사적 순간에 면역학이 얼마나 지대한 공을 세웠는지도 설파한다.
저자는 “우리 안의 ‘우아한 방어’ 시스템이 언제나 우아하게 우리를 지켜 나가게 하기 위해선 반드시 몸속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내부가 외부를 받아들이고 밀어내는 면역체계를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편견에 가둬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