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있다. 20세는 약관, 40세는 불혹, 50세는 지천명 등이다. 이때마다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창립 20주년, 30주년, 50주년 등을 거치면서 새로운 비전을 세운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지낸 영림목재는 주력 제품을 우드슬랩으로 바꾸며 ‘100년 기업’에 도전하고 있다. 가구유통의 본고장 서울 논현동에도 곧 진출할 예정이다. 오는 30일 창립 20주년을 맞는 인공관절업체 코렌텍은 다양한 신제품으로 신시장을 개척한다는 비전을 세웠다. 도전정신으로 가득찬 이들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만나봤다.
특수목의 대명사이던 영림목재(회장 이경호·70)가 변하고 있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영림목재는 올해를 ‘100년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해’로 설정하고 몇 가지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첫째, 가구유통의 1번지 서울 논현동 진출이다. 인천 남동산업단지에 본사를 둔 영림목재는 이곳의 우드슬랩 전시장을 확장한 데 이어 다음달 4일 논현동에 매장을 연다. 논현동은 국내 가구제품은 물론 이탈리아 독일 등의 명품 가구와 인테리어제품이 판매되는 국내 가구유통 1번지다.
이경호 회장은 “논현동 매장은 1층과 2층을 합쳐 약 330㎡ 규모로 제품 전체를 전시하기엔 부족하지만 이곳을 통해 예술적인 원목제품을 접한 사람들을 본사로 안내해 풍부한 제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창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주력 제품의 교체다. 이젠 특수목을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이 회사는 그동안 악기용 나무 등 특수목을 발굴해 국내시장을 개척해왔다. 하지만 이젠 우드슬랩을 주축으로 한 가구제품과 운반도구인 목재팰릿, 원목마루가 주종이다. 심혈을 기울이는 제품은 우드슬랩이다. ‘우드슬랩’은 원목을 잘라 건조해 만든 원목판이다. 나뭇결이 살아 있어 아름답고 튼튼한 게 특징이다. 호두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삼나무, 물푸레나무는 물론 아프리카산 부빙가, 가링 등 다양한 수종의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나무마다 고유의 무늬가 있어 나만의 제품을 장만하려는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회사는 원목테이블에 이어 최근 우드슬랩을 활용한 침대와 화장대 등 다양한 가구를 선보였다.
셋째, 엄격한 건조에 의한 품질 차별화다. 이 회사는 충남 당진(약 9만㎡)에 원목 건조 및 가공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회장은 “원목은 제대로 말리지 않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칫 휘거나 갈라질 수 있다”며 “우리는 자연건조, 인공건조, 양생건조, 표면가공, 도장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제작 과정이 1년 이상 걸린다. 심지어 원목을 들여다 수년이 지난 뒤에야 가공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우드슬랩은 하나의 예술품”이라며 “수백 년 된 나무는 곳곳에 옹이와 굴곡이 생기는데 그 자체가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아끼던 제품이 팔려나갈 땐 가슴이 아플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영림목재는 1969년 이 회장의 선친이 인천에서 창업한 업체다. 이 회장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대우실업과 동양정밀에서 근무하다가 부친이 쓰러지자 가업을 이어받았다. 그는 목재를 단순 가공하는 데서 벗어나 미국 캐나다 유럽 동남아시아 중남미를 다니며 새로운 수종을 발굴해 국내에 소개했다. 나무를 찾아 연구하고 말리고 가공해서 최적의 제품으로 만드는 데 40년 이상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유럽 선박장비인증(EU-MED)’을 국내 처음으로 받고 상선과 크루즈선 등 중대형 선박에 쓰이는 고급 목재시장을 뚫었다. 물류 관련 목재 제품의 국제인증(유럽 표준규격인 EPAL 등)을 취득하고 로봇을 이용한 생산자동화도 이뤘다. 목재와 합판을 적절히 결합해 내구성을 높인 ‘목재결합 합판 팰릿’도 선보였다.
이 회장은 “원목은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는 상품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며 “밀림 속을 헤매기도 하고 왕복 20시간가량 차를 달려 산림지대의 나무를 직접 파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건축자재로 원목을 많이 쓰는 일본에 건너가 돗토리와 도쿄에서 원목을 공부하기도 했다.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아들 이승한 전무(38)는 도쿄대 대학원에서 목재를 공부했다.
사회 활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이 회장은 적십자인천지사 회장과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KBCSD) 회장,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회장은 물론 어머니 부인 등 가족 세 명이 모두 1억원 이상 기부자인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49년 역사의 인천남성합창단의 단장이기도 하다.
김낙훈 한경글로벌강소기업연구원장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