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억울함, 거짓 사연으로 변질되는 국민청원 [승재현의 사이다]

입력 2020-05-21 09:54
수정 2020-05-21 13:11


지난 3월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신의 25개월 된 딸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제목의 충격적인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엄벌해달라고 했다. 이 청원에 53만명 넘게 동의했다.

이글을 본 필자도 읽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생후 25개월 유아를 초등학교 5학년이 성폭행했다는 사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이 이어졌다. 이 청원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가해 아동이 실존하지 않고 피해 아동 병원 진료 내역이 사실과 다른 점을 확인했다고 청와대에서 밝혔다. 사실 25개월 딸이 있다는 것 외에는 모두 거짓으로 판명 난 것이다.

청와대 청원은 국민이 참여해 의제를 만들어가는 소통의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신뢰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청원의 내용이 개인정보, 허위사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포함된 청원은 삭제 또는 일부 내용 ‘숨김’처리가 되도록 했다. 또, 지난 3월부터는 최소 100명이 동의가 있어야 공개되는 ‘사전동의제도’를 시행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거짓 청원을 걸러내지 못했다. 거짓이 신뢰를 누르고, 정의로운 국민의 뜻을 덧없이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거짓 청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 청와대 청원 분야는 정치개혁, 일자리, 행정, 경제민주화 등 17개 분야로 되어 있다. 각 분야에서 국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 억울한 사정, 실제 필요한 정책을 청원하고 있다.

여기서 들여다보아야 할 유형 중 하나가 바로 개인적인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건관련 청원이다. 억울한 사정이 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해결할 수 없는 경우, 그 사연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다.

수많은 문제들이 청와대 게시판을 통해 알려지고, 바르게 해결되어 왔다. 분명 순기능이 있다. 다만 이러한 청원이 진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를 알 수 없어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억울함이 청원으로 올라오는 경우, 100명의 사전동의는 의미가 없다. 정책제안이나, 정치의견에 대해서 100명의 사전동의는 청원이 의미가 있다는 점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억울함과 관련된 사건의 경우, 100명 동의가 거짓을 참으로 변하게 하지 않는다.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사건과 관련된 거짓 청원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개인정보, 청원인 이름과 휴대전화번호를 내부적으로 등록하고 청원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정책제안이나 정치의견은 그 사람의 신념과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청원인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침해 소지가 있다. 그러나 사건 청원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의사를 품고 있다. 사실상 고소장과 유사하다. 청원인 성명과 휴대전화번호는 사건 처리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기본정보다.

이 정보를 통해 청와대 관계자는 청원인과 통화해 피해사실을 확인하고 난 뒤 청원의 글이 외부에 보이도록 한다면 거짓 청원의 대부분은 걸러질 수 있다고 본다.

사실관계 확인을 통해 거짓 청원 방지하려는 노력은 청와대의 공공의 의무와 관련이 있다. 거짓 청원은 경우에 따라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허위사실에 의한 업무방해죄, 정보통신망법상의 허위 명예훼손죄로 처벌받게 된다. 그러므로 거짓 청원은 막을 수 있다면 막아야 한다.

거짓 청원을 하는 경우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맞다. 그러나 거짓 청원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처벌을 강화하는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국가는 국민 처벌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